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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번 시작된 후에는 살아 있는 날까지는 진행형이기에...
어제 슬펐다고 그 슬픔과 낙심으로 주저 앉아 멈추어 있을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어제 슬펐다고 오늘까지 망치게 할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인생은 ing!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영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배우 '쥴리아 로버츠'가 나오기도 해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는 것은 비둘기 같이 순결한 심령위에 성령이 임재한다는 뜻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8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8절)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이 모든 자연현상이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의 삶도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의 말씀으로 오늘의 나도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을 때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때 전쟁터에서 이스라엘군 4000병이 죽게되는 위기가 닥친다. 그때 전장에 장군으로 있던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실로에 안치되어 있는 법궤를 가져오고자 한다. 그들은 법계가 이스라엘의 위대한 하나님의 승리의 도구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레위 지파의 고핫자손들이 법궤를 메고 전쟁터로 나가게된다. 법궤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감격을 했는지 땅이 진동할 정도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이들의 반응과 상관 없이 블레셋군대는 전세를 몰아가고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법궤가 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3만명이 죽어나갔으며 장군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고 법궤마저 블레셋군에게 빼앗기며 군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가 목이 부러져 즉사하며 그의 자부가 사산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임제의 상징인 법궤가 이스라엘의 승리를 상징한다는 그들의 믿음은 가상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하나님은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지적해 주고 있다.
법궤는 부적이 아니다. 성경이 있으니 믿음이 있을 것이다는 착각을 하면 않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육비에 새길 뿐 아니라 심비에 새기라 하셨다. 하나님을 믿으니 우리집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말씀은 듣고 지키라고 주어진 것이지 부적처럼 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상처럼 부적처럼 사용하면 않된다. 성경을 잠잘 때 베고 누워자버리면 그 성경은 목침에 불과하다.성경은 부적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법궤가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는 이유는 듣고 순종하라고 지키라고 주시는 것이다. 말씀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된 것이라면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야한다는 뜻이다.
우선 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살피때 세상 가운데서 우리의 삶을 먼저 살피라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한편 법궤를 가져간 블레셋은 그들의 신전 다곤 신 옆에다 법궤를 가져다 두었는데, 다음날 다곤 신이 넘어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다음날은 앞으로 꼬꾸라져 있고 피괴되었으며 그 지역에 독동이 퍼져서 그들이 회의를 하여 법궤가 이유임을 찾아내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법궤를 이스라엘에 돌려주기로 결정한다.그들은 법궤를 수레에 실어서, 짐을 실어날라 본 적이 없고 젖을 떼지 않은 암소 두마리에 실어 벳세메스로 보내기로 한다. 그들이 가기는 가는데 그 소가 울면서 갔다. 마음도 갈마음이 없고 수레를 끌수 있는 기술이 없는 소 들이 그들이 베세메스로 곧장 갔다. 그것을 본 블레셋은 이스라엘 신은 당할 수가 없음을 인정한다. 이스라엘 땅이지만 블레셋의 지배를 받던 벳세메스 사람들은 수레를 몰고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게된다. 법궤를 본 벳세메스 사람들은 번쩍거리던 법궤를 들여다보고 열어보기로 결정한다. 모세 당시에 만들었던 법궤를 그 후에는 본적이 없었는데 그들은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에 뚜껑을 열었는데 여는 그순간에 즉시 70명이 그 자리에서 죽게 된다.
법궤 뚜껑을 열어서 죽게되었다. 그럼 법궤 그것이 무엇이라고 사람을 죽게 만드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복종하고자 하는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그들은 죽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벳 전투에서처럼 부적처럼 쓰여져도 책망받을 일이며
벳세메스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호기심으로 감탄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모두가 책망받을 일이다.
농부가 나무를 심어놓고 기쁜 것이 아니라 열매를 보아서 기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속에 말씀이 실천되어질때 순종되어 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그리하여 법궤는 기럇아르바의 아미나답이라는 사람의 집에 70년이나 보관을 하게 된다. 그 물건이 너무 무서운 물건이라 70년 동안이나 이곳에 보관되어진다. 그후에 이스라엘의 다윗왕이 웃사의 집에서 하나님의 법궤가 수레에 실려 이스라엘로 옮겨지게 된다. 제사장들이 왕에게 성경의 말씀대로 법궤의 네개의 고리에 꿰어 레위지파 고핫자손으로 메게 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웃사와 아효의 그들의 권위에 눌려 수레에 실은 채로 옮기게 된다. 그러다가 수레가 기울어져 나곤의 마당에서 법궤가 흔들리자 웃사가 법궤를 잡자 잡는 순간에 즉사하게 된다. 아효는 그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웃사가 법궤를 잡다는 히브리 원문 표현은 '내 소유처럼 여겼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웃사는 왕도 보고있고 백성이 보고 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꺼야 라고 하는 생가을 꾸짖으신것이다. 혹시 말씀을 내려다 보고 있지는 않는가? 내가 성경위에 있지는 않는가? 웃사가 손을 댄 것이 문제가 아니고 말씀에 대한 자세가 심각한 문제였다. 말씀을 독점적으로 소지하고 있으며 자신이 말씀을 전하는 자라 할지라도 말씀은 우리 위에 있어야한다. 교회의 주인은 절대 되어서는 않된다. 이곳이 하나님의 집인 것을 믿을 진대 이 곳에 있는 풀 하나 꽃 하나도 내 소유라 생각하면 않된다. 소유가 아니라 청지기로 살아야 한다.
어느 순간에 말씀에 함부로 손댔다가 웃사와 같은 벌을 받게 될 지 모른다.
다윗은 이 사건을 보고 웃사를 베레스 웃사라 하며 분노하였다. 다윗은 말씀 앞에 무릎꿇고 말씀 앞에 겸손해야겠구나 하고 분노하였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향해 화내고 분노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이 나에게 복주시고 하나님의 평강을 내려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부적도 호기심의 대상도 아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8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8절)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이 모든 자연현상이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의 삶도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의 말씀으로 오늘의 나도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을 때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때 전쟁터에서 이스라엘군 4000병이 죽게되는 위기가 닥친다. 그때 전장에 장군으로 있던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실로에 안치되어 있는 법궤를 가져오고자 한다. 그들은 법계가 이스라엘의 위대한 하나님의 승리의 도구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레위 지파의 고핫자손들이 법궤를 메고 전쟁터로 나가게된다. 법궤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감격을 했는지 땅이 진동할 정도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이들의 반응과 상관 없이 블레셋군대는 전세를 몰아가고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법궤가 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3만명이 죽어나갔으며 장군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고 법궤마저 블레셋군에게 빼앗기며 군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가 목이 부러져 즉사하며 그의 자부가 사산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임제의 상징인 법궤가 이스라엘의 승리를 상징한다는 그들의 믿음은 가상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하나님은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지적해 주고 있다.
법궤는 부적이 아니다. 성경이 있으니 믿음이 있을 것이다는 착각을 하면 않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육비에 새길 뿐 아니라 심비에 새기라 하셨다. 하나님을 믿으니 우리집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말씀은 듣고 지키라고 주어진 것이지 부적처럼 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상처럼 부적처럼 사용하면 않된다. 성경을 잠잘 때 베고 누워자버리면 그 성경은 목침에 불과하다.성경은 부적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법궤가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는 이유는 듣고 순종하라고 지키라고 주시는 것이다. 말씀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된 것이라면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야한다는 뜻이다.
우선 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살피때 세상 가운데서 우리의 삶을 먼저 살피라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한편 법궤를 가져간 블레셋은 그들의 신전 다곤 신 옆에다 법궤를 가져다 두었는데, 다음날 다곤 신이 넘어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다음날은 앞으로 꼬꾸라져 있고 피괴되었으며 그 지역에 독동이 퍼져서 그들이 회의를 하여 법궤가 이유임을 찾아내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법궤를 이스라엘에 돌려주기로 결정한다.그들은 법궤를 수레에 실어서, 짐을 실어날라 본 적이 없고 젖을 떼지 않은 암소 두마리에 실어 벳세메스로 보내기로 한다. 그들이 가기는 가는데 그 소가 울면서 갔다. 마음도 갈마음이 없고 수레를 끌수 있는 기술이 없는 소 들이 그들이 베세메스로 곧장 갔다. 그것을 본 블레셋은 이스라엘 신은 당할 수가 없음을 인정한다. 이스라엘 땅이지만 블레셋의 지배를 받던 벳세메스 사람들은 수레를 몰고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게된다. 법궤를 본 벳세메스 사람들은 번쩍거리던 법궤를 들여다보고 열어보기로 결정한다. 모세 당시에 만들었던 법궤를 그 후에는 본적이 없었는데 그들은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에 뚜껑을 열었는데 여는 그순간에 즉시 70명이 그 자리에서 죽게 된다.
법궤 뚜껑을 열어서 죽게되었다. 그럼 법궤 그것이 무엇이라고 사람을 죽게 만드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복종하고자 하는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그들은 죽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벳 전투에서처럼 부적처럼 쓰여져도 책망받을 일이며
벳세메스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호기심으로 감탄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모두가 책망받을 일이다.
농부가 나무를 심어놓고 기쁜 것이 아니라 열매를 보아서 기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속에 말씀이 실천되어질때 순종되어 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그리하여 법궤는 기럇아르바의 아미나답이라는 사람의 집에 70년이나 보관을 하게 된다. 그 물건이 너무 무서운 물건이라 70년 동안이나 이곳에 보관되어진다. 그후에 이스라엘의 다윗왕이 웃사의 집에서 하나님의 법궤가 수레에 실려 이스라엘로 옮겨지게 된다. 제사장들이 왕에게 성경의 말씀대로 법궤의 네개의 고리에 꿰어 레위지파 고핫자손으로 메게 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웃사와 아효의 그들의 권위에 눌려 수레에 실은 채로 옮기게 된다. 그러다가 수레가 기울어져 나곤의 마당에서 법궤가 흔들리자 웃사가 법궤를 잡자 잡는 순간에 즉사하게 된다. 아효는 그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웃사가 법궤를 잡다는 히브리 원문 표현은 '내 소유처럼 여겼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웃사는 왕도 보고있고 백성이 보고 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꺼야 라고 하는 생가을 꾸짖으신것이다. 혹시 말씀을 내려다 보고 있지는 않는가? 내가 성경위에 있지는 않는가? 웃사가 손을 댄 것이 문제가 아니고 말씀에 대한 자세가 심각한 문제였다. 말씀을 독점적으로 소지하고 있으며 자신이 말씀을 전하는 자라 할지라도 말씀은 우리 위에 있어야한다. 교회의 주인은 절대 되어서는 않된다. 이곳이 하나님의 집인 것을 믿을 진대 이 곳에 있는 풀 하나 꽃 하나도 내 소유라 생각하면 않된다. 소유가 아니라 청지기로 살아야 한다.
어느 순간에 말씀에 함부로 손댔다가 웃사와 같은 벌을 받게 될 지 모른다.
다윗은 이 사건을 보고 웃사를 베레스 웃사라 하며 분노하였다. 다윗은 말씀 앞에 무릎꿇고 말씀 앞에 겸손해야겠구나 하고 분노하였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향해 화내고 분노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이 나에게 복주시고 하나님의 평강을 내려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부적도 호기심의 대상도 아니다.
3D로 보았느데, 나는 사람들이 왜 사람들이 그 불편하고 무거운 안경을 쓰고서 돈을 13000원씩이나 내고서 3D를 보는지 모르겠다.
3D로는 아쉬움이 많았던 영화 .
TAG 라스트 에어밴드
48000원 짜리를 고객카드 만들고 10% 할인 받아서... 완전히 마음에 드는건 아닌데...어깨끈도 다소간 이상하고... 하지만 넷북도 들어가고 책도 두어권 여유있게 들어가주니 나를 위한 가방이긴 하다. 등산용춤점에 만든 가방아니랄까봐 가운데 지퍼가 사이드로 열도록 두개 달렸다. 이건 케주얼 가방인데 말이지...좀 웃기다. 오래 오래 잘 쓸 것 같다. 이것 메고 아침에 빈이랑 산책을 다녀왔다.
원래 이것 보다 훨씬 색이 이쁜데 사진엔 이상하게 보인다.
이번 여름엔 카드 지출이 엄청나다....한동안 생필품 구입 이외엔 카드 쓸 생각 말아야겠다.
TAG MILLET
♡책상 : 한샘 학생 책상 23만원.
♡의자 : 인터넷에서 78000원
의자는 주문하지 3일만에 도착했는데 책상은 배달되는데 꼬박 보름이 걸렸다.
의자에 앉아서 자기방에서 공부하게 된 하빈이
구구셈이 완벽하지 않아 구구셈 외우는 중!
일찍 일어난 하빈이가 또 티비 리모컨을 들고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자전거 타고 강가에 가자고 하니 금새 따라나섭니다.
하빈이의 낡은 자전거가 아이들이 차는 축구공에 세게 맞아서 페달을 밟을 때 마다 끄르럭 끄르럭 소리를 내는게 영 귀에 거슬립니다. 수리 맡겨보고 여의치 않으면 이 참에 새 자전거를 구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초록에 눈이 시원해집니다. 오는 길에 정자에도 잠시 누웠다 왔습니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오니 비가 쏟아집니다. 남편과 하림이는 각자 아침을 해결한 후이고, 고기 먹고 싶다는 하빈이를 위해 햄을 구워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이렇게 8월 28일 토요일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TAG 하빈
사람들은 맘 편한게 제일이라고 하는데...
내가 하는 짓은 그쪽하곤 거리가 멀다.
내가 뭘 원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누가 해답을 가르쳐 준대도 난 그말을 듣지 않을 것 같다.
내 삶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뭘까?
자존감이 마이너스일 때.
아무 것에도 자신이 없고
두렵기만 하고
무슨 일을 하든 주변의 판단이나 눈치를 먼저 보게 되고,
내 힘에 지나도록 과도한 친절을 베풀고자 한다. 결국은 상대에 대해 섭섭해 하며
가까운 사이 일수록 불신하게 되며
모두가 내탓이라 여겨진다.
결국은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의 생각에 잠수해 버린다.
사람의 마음이나 말은 믿을 게 못된다고 자꾸자꾸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그래서 결국은 믿을 수 없는 존재가 스스로 되어버리는...
TAG 자존감
'원빈' 이기에 흥행이 되었을 것 같은...
다른 사람이 주연을 맡았다면 흥행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납치된 꼬마 여자애를 구하기 위해 옆집 아저씨가 목숨을 걸고 조폭들과 싸운다는 정말 엉성한 스토리...
그래도 원빈이라서 다 용서 된다니...
다른 사람이 주연을 맡았다면 흥행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납치된 꼬마 여자애를 구하기 위해 옆집 아저씨가 목숨을 걸고 조폭들과 싸운다는 정말 엉성한 스토리...
그래도 원빈이라서 다 용서 된다니...
발상의 전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의 멋진 연기도 좋았고 무엇보다 보는 내내 흥미 진진하게 푹 빠져서 보았다.
TAG 인셉션
여름 방학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습니다.
'파괴 된 사나이'를 보았습니다. 김명민 이라는 배우의 연기력도 있었겠지만 지난 번에 보았던 '아저씨'에 비해 극본이 훌륭한 탓도 있을 것입니다.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와 엄마의 차이점이 너무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더욱 그러하였고 결국은 같은 목표를 향해 자식을 위해서는 어느쪽이든 자신의 목숨을 내어 줄 것이라 믿고 식물인간 상태의 아내를 죽일 수 밖에 없는 한없이 강한 아버지 이지만 연약한 남편의 그 먹먹함도 연약한 남자의 모습도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지지 않는 인생.
목표가 없는 인생은 한없이 연약합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삶 또한 연약하고 추하기 그지 없습니다.
삶이란 결국 자신 뿐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살아갈 때 빛이 나는가 봅니다.
TAG 파괴된 사나이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내가 죄인되었을 때 나를 선택하였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거저 주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를 살리셨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나의 나됨은 나의 의지로 된 것이 아니고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선택이자만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찾는 인생이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고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보시고자 하는 중심이 무엇일까? 이 중심은 나의 의지로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다윗의 중심을 보면서 그의 중심을 copy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에 합격점을 내리면 우리 인생에는 수많은 기회가 다가올 것이다.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만큼 하나님이 나를 들어 사용하실 것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노인도 꿈을 꾸고 소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윗의 중심 관리
하나님은 본문에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사울을 왕의 자리에 내치시고자 한다. 이때 새로운 왕의 재목을 봐 두었다 말씀하신다. 이에 사무엘이 라마에서 베들레헴까지 가서 이새의 아들 일곱명의 아들을 선보게 된다. 사무엘이 장자 엘리압을 보았을 때 그가 왕의 재목임을 인정하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며 일곱명을 모두 퇴짜 놓으신다. 모두 본 후에
말째 양지키는 다윗을 데려오게 한다. 성경에서는 그의 외모를 얼굴이 붉고 눈이 빼어난자 라고 기록하고 그를 보았을 때 사울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으로 다윗이 왕의 재목임을 알고 기름을 붓는다.
그렇다면 다윗의 중심이 어떠하길래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되었는가?
막내는 자신의 자유로움을 누리나 형에 의존하는 의존성을 가지게 된다. 대부분이 의존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책임의식에 한계를 가지게 된다.
기도 많이하고 예배 잘 드린다는 것이 중심인가?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중심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책임감을 인정 받은 것이다. 막내인 다윗은 형들이 단장 할 수 있도록 집으로 보내고 그는 양을 지키러 들로 갔다.
여러운 일이 왔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그 사람의 관심사이다. 자신의 욕망을 내리 누릴 수 있는 힘, 자신이 낮아 질 수있는 힘 그것이 다윗의 내공이었다. 다윗의 위대함은 또 있다.골리앗이 쳐들어 왔을 때 위의 삼형제가 징집이 되었을 때 밀가루 한에바(한말 두되), 떡 10덩이, 치즈10덩이 를 전쟁터의 형들에게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그때 그가 가야할 그길은 60리나 되는 길을 가라고 하였다. 왜 다윗 혼자 이길을 가게 되었나? 이새는 위에 형들에게 맡기지 않았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일을 시키신다. 다윗은 60리의 길을 아무 불평없이 목이 빠지라고 그 길을 갔다. 다윗의 중심에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윗도 형들이 있음을 핑계할 수 있었지만 그리하지 않았다. 다윗은 위의 세대를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울은 미친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미치광이 왕 사울을 두번이나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를 죽일 수 없다하며 기회를 과감히 포기하였다. 의식에 있어 다윗과 같은 의식을 지녀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3세대가 살아가고 있는데 공경 받아야할 1세대와 공경 해야할 2세대와 투자 받아야할 3세대가 공존하고 있다. 다윗은 윗세대를 공경 할줄 아는 사람이었다.
모압은 이스라엘의 원수의 나라이지만 그는 예를 갖추었다. 하나님이 세운 권위를 인정하였다. 내 눈에 가시같고 내눈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내려주신 권위를 인정하여야 한다.
다윗은 자기 혼자 살기도 힘들었던 그때에 자신을 믿고 따르던 400명의 군사를 아둘람 굴에서 먹였다. 10년의 유랑생활을 하며 다윗은 모압 땅에서 미치광이 짓을 할 때도 있었고, 제사장의 떡을 얻어먹고 살 때도 있었고,포도 이삭을 먹을 때도 있었지만 그는 없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우리가 독립하지 못하면 우리는 중심을 하나님께 인정 받지 못한다.
다윗은 아둘람굴에서 400명을 데리고 그들과 생사를 같이 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이런 심성을 인정 받았다.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잡을 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기에 내가 죽어도 후회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공할 가능성이 없으면 옳은 일인데도 하지 않는가? 우리의 생명도 그 때 그시간에 우리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야한다.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던져야 할 때가 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우리 가운데 빼어나고 붉은 소년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해야한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왜 다윗을 선택하셨는지 기억하고 나에게 다윗을 본받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간구하라.
하나님은 내가 죄인되었을 때 나를 선택하였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거저 주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를 살리셨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나의 나됨은 나의 의지로 된 것이 아니고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선택이자만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찾는 인생이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고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보시고자 하는 중심이 무엇일까? 이 중심은 나의 의지로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다윗의 중심을 보면서 그의 중심을 copy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에 합격점을 내리면 우리 인생에는 수많은 기회가 다가올 것이다.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만큼 하나님이 나를 들어 사용하실 것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노인도 꿈을 꾸고 소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윗의 중심 관리
하나님은 본문에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사울을 왕의 자리에 내치시고자 한다. 이때 새로운 왕의 재목을 봐 두었다 말씀하신다. 이에 사무엘이 라마에서 베들레헴까지 가서 이새의 아들 일곱명의 아들을 선보게 된다. 사무엘이 장자 엘리압을 보았을 때 그가 왕의 재목임을 인정하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며 일곱명을 모두 퇴짜 놓으신다. 모두 본 후에
말째 양지키는 다윗을 데려오게 한다. 성경에서는 그의 외모를 얼굴이 붉고 눈이 빼어난자 라고 기록하고 그를 보았을 때 사울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으로 다윗이 왕의 재목임을 알고 기름을 붓는다.
그렇다면 다윗의 중심이 어떠하길래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되었는가?
막내는 자신의 자유로움을 누리나 형에 의존하는 의존성을 가지게 된다. 대부분이 의존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책임의식에 한계를 가지게 된다.
기도 많이하고 예배 잘 드린다는 것이 중심인가?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중심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책임감을 인정 받은 것이다. 막내인 다윗은 형들이 단장 할 수 있도록 집으로 보내고 그는 양을 지키러 들로 갔다.
여러운 일이 왔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그 사람의 관심사이다. 자신의 욕망을 내리 누릴 수 있는 힘, 자신이 낮아 질 수있는 힘 그것이 다윗의 내공이었다. 다윗의 위대함은 또 있다.골리앗이 쳐들어 왔을 때 위의 삼형제가 징집이 되었을 때 밀가루 한에바(한말 두되), 떡 10덩이, 치즈10덩이 를 전쟁터의 형들에게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그때 그가 가야할 그길은 60리나 되는 길을 가라고 하였다. 왜 다윗 혼자 이길을 가게 되었나? 이새는 위에 형들에게 맡기지 않았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일을 시키신다. 다윗은 60리의 길을 아무 불평없이 목이 빠지라고 그 길을 갔다. 다윗의 중심에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윗도 형들이 있음을 핑계할 수 있었지만 그리하지 않았다. 다윗은 위의 세대를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울은 미친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미치광이 왕 사울을 두번이나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를 죽일 수 없다하며 기회를 과감히 포기하였다. 의식에 있어 다윗과 같은 의식을 지녀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3세대가 살아가고 있는데 공경 받아야할 1세대와 공경 해야할 2세대와 투자 받아야할 3세대가 공존하고 있다. 다윗은 윗세대를 공경 할줄 아는 사람이었다.
모압은 이스라엘의 원수의 나라이지만 그는 예를 갖추었다. 하나님이 세운 권위를 인정하였다. 내 눈에 가시같고 내눈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내려주신 권위를 인정하여야 한다.
다윗은 자기 혼자 살기도 힘들었던 그때에 자신을 믿고 따르던 400명의 군사를 아둘람 굴에서 먹였다. 10년의 유랑생활을 하며 다윗은 모압 땅에서 미치광이 짓을 할 때도 있었고, 제사장의 떡을 얻어먹고 살 때도 있었고,포도 이삭을 먹을 때도 있었지만 그는 없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우리가 독립하지 못하면 우리는 중심을 하나님께 인정 받지 못한다.
다윗은 아둘람굴에서 400명을 데리고 그들과 생사를 같이 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이런 심성을 인정 받았다.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잡을 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기에 내가 죽어도 후회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공할 가능성이 없으면 옳은 일인데도 하지 않는가? 우리의 생명도 그 때 그시간에 우리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야한다.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던져야 할 때가 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우리 가운데 빼어나고 붉은 소년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해야한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왜 다윗을 선택하셨는지 기억하고 나에게 다윗을 본받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간구하라.
TAG 사무엘상16장7절
외삼촌한테서 기타 싼 값에 잘 구입했다는 말과 기타에 소질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자신있게 기타 연주를 하는 하림이. 잠시의 가르침으로 연주가 한눈에 보기에도 확 늘었다.
빈 박스로 만들기 한다고 학원까지 포기하고 앞베란다에서 땀띠까지 나가며 아지트 만들었던 하빈이의 작품.지붕은 과자모양으로 꾸미고 네 벽은 봄, 여름 가을,겨울로 만들었습니다. 꼬박 3일이 걸린것 같습니다.
이 아이는 자라서 집을 짓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아이는 자라서 집을 짓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제 1주일 정도를 남겨 놓은 방학.
곡성 기차마을, 노고단을 오른 직원여행을 시작으로 성경학교 준비로 한주간 바빴고 남해 편백 자연 휴양림으로 2박 3일의 성경학교를 다녀왔고, 소매물도와 거제 여차해수욕장으로 해수욕을 다녀왔고, 교회 아이들 학예발표회 율동을 지도하여 3위를 했고, 신천초에 가족 야유회를 가서 난생 처름으로 통돼지바베큐파티와 물놀이를 하였고 그간에 부진아 지도한다고 이틀 학교 출근 하고 하루 지킴이 활동을 하고 영화를 두편 보고... 그러고 나니 방학이 8일 정도 남았네.
오늘은 오후에 남동생 내외가 온다고 하고 내일은 어딘가로 바람을 쐬러가겠지.
방학 동안 틈나는 대로 하림이와 영어공부를 했고, 아이들 간식을 만들어 먹이고, 읽고 싶었던 책을 10권정도 읽었고... 시간 나는 대로 새벽시장을 들러서 시장 구경을 하고 오후엔 시내에 나가 차도 마시고...새벽이 되도록 티비도 보고...
쯕 이렇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계속 이렇게 산다고 하면 이 생활도 지루하겠지.
열심히 일했기에 지금의 휴식이 더 귀하고 필요하며 소중하게 여겨지겠지.
지금은 방학을 정리하고 마루리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꼭 할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사실은 혼자 마음 편하게 여행을 다녀오고 싶습니다. 누구의 감정에 얽매이지도 않고 마음을 읽을 필요도 없고 마음 맞출 필요도 없는...그런 혼자하는 여행을 다녀오고 싶습니다.
충분히 쉬었고 충분히 즐겼고 그 어느때보다 잘 보낸 여름 방학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많이 지쳤나 봅니다.
좀 쉬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가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여전히 과거의 모습으로 그대로 매어 있는 것이 물질 문제이다.
금과 은 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는대도 그대로 물질 문제에 매여 있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 갑자기 온 세상을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있느니라" 내게 궁핍에 처할줄도 알고~ 사도 바울의 이 말은 어떤 상활 가운데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삶. 물질을 정복하라는 말씀이다. 물질을 쥐고 흔들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는 말이었다.
아브라함이 소돔사람을 구출하고 돌아왔을 때 소돔 왕이 많은 물질을 준자든 것을 거절하였다. 아브라함은 취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다는 권세가 있는 사람임을 보여 준 것이다. 그 영혼은 돈으로 사고 팔수있는 존재가 아닌 구너세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의 물질 때문에 기쁨 소망이 좌지우지 된다면 우리는 아직도 독립된 나라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행위적인 부분에서 우리가 독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독립국의 나라가 아니다.식민지 시대에는 경찰에 돌을 던지거나 비방한다거나 조롱한다거나 폭탄을 던지는 일이 옳은 일이었지만 독립을 한 후에는 그런 일이 옳지 않다 그러나 독립이 되었는데도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선지국과 후진국의 차이점은 화장실 문화에 있다.
후진국의 화장실은 끊임없이 화장실을 치우지만 더럽고 선진국의 화장실은 치우는 사람이 보이지 않지만 항상 깨끗하다. 선진국민은 자신이 자주민이므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자주의식이 있지만 나가서는 자주민이 아니다.
내가 머물다 간 자리에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어서는 안된다.
레위기서를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린 중요한 가르침이 있는데 그것은 그러한 땅의 주인이 되는 사람은 책임이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추수의 규칙을 만들어 주셨는데 이삭은 거두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주인의식 자립을 원하셨다. 자기가 먹을 것을 밭에 나가 이삭을 줍는 수고를 감당하라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축복의 원리이다.
우리는 독립된 백성답지 못하게 살아왔다.
의식의 독립("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
잘못된 줄 알면서도 끌려다니는 의식을 버리라.
의식의 독립
의식에 있어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의 의식을 보여줄 때 우리는 힘을 드러낼 수 있다.
우리는 정통기독교인으로 어떤 의식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가?
소금이 무엇인가? 조금만 넣어도 그 맛을 내는 것이 소금 아닌가? 기독교인의 힘이 어디 갔나? 잘못 되었으면 끝까지 덤벼야 한다.
의식의 독립!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매운 맛이 없어졌다.이게 아니라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고칠 수 있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있는 '체면'
대만이나 일본에서의 자전거 통근길은 70%를 차지하는데 우리나라는 거의 100%가 자가용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 민족이 광 나는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한없이 피곤한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기도하고 말씀보고 판단이 서면 그대로 행하라.
우리의 의식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결정을 짓고나서 뒤를 돌아보지 말고 가되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한다.
자녀를 의식적으로 행위적으로 어떻게 독립적인 존재로 키울 것인가?
온실의 화초같이 모양만 있고 향기가 없는 존재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여전히 과거의 모습으로 그대로 매어 있는 것이 물질 문제이다.
금과 은 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는대도 그대로 물질 문제에 매여 있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 갑자기 온 세상을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있느니라" 내게 궁핍에 처할줄도 알고~ 사도 바울의 이 말은 어떤 상활 가운데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삶. 물질을 정복하라는 말씀이다. 물질을 쥐고 흔들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는 말이었다.
아브라함이 소돔사람을 구출하고 돌아왔을 때 소돔 왕이 많은 물질을 준자든 것을 거절하였다. 아브라함은 취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다는 권세가 있는 사람임을 보여 준 것이다. 그 영혼은 돈으로 사고 팔수있는 존재가 아닌 구너세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의 물질 때문에 기쁨 소망이 좌지우지 된다면 우리는 아직도 독립된 나라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행위적인 부분에서 우리가 독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독립국의 나라가 아니다.식민지 시대에는 경찰에 돌을 던지거나 비방한다거나 조롱한다거나 폭탄을 던지는 일이 옳은 일이었지만 독립을 한 후에는 그런 일이 옳지 않다 그러나 독립이 되었는데도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선지국과 후진국의 차이점은 화장실 문화에 있다.
후진국의 화장실은 끊임없이 화장실을 치우지만 더럽고 선진국의 화장실은 치우는 사람이 보이지 않지만 항상 깨끗하다. 선진국민은 자신이 자주민이므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자주의식이 있지만 나가서는 자주민이 아니다.
내가 머물다 간 자리에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어서는 안된다.
레위기서를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린 중요한 가르침이 있는데 그것은 그러한 땅의 주인이 되는 사람은 책임이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추수의 규칙을 만들어 주셨는데 이삭은 거두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주인의식 자립을 원하셨다. 자기가 먹을 것을 밭에 나가 이삭을 줍는 수고를 감당하라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축복의 원리이다.
우리는 독립된 백성답지 못하게 살아왔다.
의식의 독립("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
잘못된 줄 알면서도 끌려다니는 의식을 버리라.
의식의 독립
의식에 있어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의 의식을 보여줄 때 우리는 힘을 드러낼 수 있다.
우리는 정통기독교인으로 어떤 의식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가?
소금이 무엇인가? 조금만 넣어도 그 맛을 내는 것이 소금 아닌가? 기독교인의 힘이 어디 갔나? 잘못 되었으면 끝까지 덤벼야 한다.
의식의 독립!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매운 맛이 없어졌다.이게 아니라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고칠 수 있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있는 '체면'
대만이나 일본에서의 자전거 통근길은 70%를 차지하는데 우리나라는 거의 100%가 자가용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 민족이 광 나는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한없이 피곤한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기도하고 말씀보고 판단이 서면 그대로 행하라.
우리의 의식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결정을 짓고나서 뒤를 돌아보지 말고 가되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한다.
자녀를 의식적으로 행위적으로 어떻게 독립적인 존재로 키울 것인가?
온실의 화초같이 모양만 있고 향기가 없는 존재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신천초에서 물놀이를 하고 집에 올라 오면서 하림이가 짜증을 냅니다. 그 짜증이라는 것이 하림이가 하빈이에게 사이다 먹지 말라고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과 예의 바르지 못한 행동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남편이 경비실에 물건 찾으러 간 사이 방으로 들어간 두놈을 거실에 불러 세워놓고
"너의 짜증스런 말에 나도 짜증이 났다. 그래서 너희들 좀 세워 두어야겠다."라는 말로 시작해서 평소에 내가 느낀 것을 언성을 높여가며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 사이 남편이 돌아오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 말에 일이 더 커질까 두려운 하림이가 자기의 잘못을 재빠르게 대답하며 일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좀 더 드럽게 나무라야 했는데...
후회가 되긴 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고...
나도 바르지 못한 엄마이면서 과연 아들을 나무랄 자격이 있기나 한건지...
차라리 입 다물고 있을 걸 하는 후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놔두면 저 나름대로 잘 클텐데... 오늘은 저도 몸이 힘드니까 그랬겠지...
내가 바르지 못하니 모든 일에 자신도 없고 자격도 없어 보입니다.
아들에게 많이 미안하고 후회가 되는 못난 엄마의 하루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기도 하고...
자구만 자꾸만 두렵습니다.
"너의 짜증스런 말에 나도 짜증이 났다. 그래서 너희들 좀 세워 두어야겠다."라는 말로 시작해서 평소에 내가 느낀 것을 언성을 높여가며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 사이 남편이 돌아오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 말에 일이 더 커질까 두려운 하림이가 자기의 잘못을 재빠르게 대답하며 일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좀 더 드럽게 나무라야 했는데...
후회가 되긴 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고...
나도 바르지 못한 엄마이면서 과연 아들을 나무랄 자격이 있기나 한건지...
차라리 입 다물고 있을 걸 하는 후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놔두면 저 나름대로 잘 클텐데... 오늘은 저도 몸이 힘드니까 그랬겠지...
내가 바르지 못하니 모든 일에 자신도 없고 자격도 없어 보입니다.
아들에게 많이 미안하고 후회가 되는 못난 엄마의 하루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기도 하고...
자구만 자꾸만 두렵습니다.
TAG 하림
이틀 전에 기타를 샀던 하림이는 친구에게 기타를 들고 가서 하루를 배워오더니 나에게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라고 합니다.
저금해 둔 하림이 돈 7만원과 내가 5만원을 지원해줘서 12만원에 구입한 하림이 기타.
저금해 둔 하림이 돈 7만원과 내가 5만원을 지원해줘서 12만원에 구입한 하림이 기타.
사실 오늘은 그동안 가르쳐온 유초등부 아이들의 율동 학예발표회가 있는 날이었는데... 난 그냥 가족들과 함께 신천초에서 열리는 바베큐 파티에 참석하기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쉼이 필요한 순간이었고, 가족들이 다함께 가는 여름 휴가이기도 했기에...전도사님의 섭섭한 말씀도 뒤로하고 신천초로 달렸습니다.
뙤약볕에 아래에서 배구도 하고, 가슴까지 시원하게 하는 물놀이도 하고(약 10정도), 바베큐도 먹고, 책도 읽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저 쉬고만 싶었습니다.
평소 나의 모습이라면 남들이 설걷이 한다고 부산을 떨면 나도 일어나 주섬주섬 먹었던 것들을 들고 자리를 일어날 터였지만. 오늘은 나 보다 나이든 분이 그쪽 좀 정리하라고 할때 까지 그저 엉덩이 붙이고 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쉬고만 싶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 인생이라는 영적인 씨앗을 심어서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울창한 믿음의 숲을 이룬다면 내가 살아간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계명이라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이 땅이라는 감옥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죄수였는데 이런 우리에게 그분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복음을 전해주었다. 이 쉬운 것을 99%의 사람이 믿지 않는 이세상이다.
선택을 하더라도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었다. 만약에 있다면 우리는 영생토록 즐거울 수 있다. 이보다 행복한 일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십계명 앞에 우리는 살아있을 자가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의 모든 형이 집행 되었고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었으니 이를 반드시 지켜야한다. 이것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이 말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표지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성경을 10개로 압축한 것이 십계명이고 십계명을 하나로 압축한 것이 본문의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서로 사랑하라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
이세대들이 할 일은 그 이전의 세대들을 공경하는 일이다.
어른을 존경하고 공경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품어야 할 법이다.
이 상황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고 있는 세대들에게 우리는 격려하는 세대가 되어야 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더라도 감사와 칭찬으로 격려해야 한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는 아낌 없는 투자를 해야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법이다.
법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도덕심을 자랑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지켜야할 사랑의 방법이다.
로마서 16장 1절,2절
서로 사랑하는 두번째 방법은 예절을 지키자.
뵈뵈라는 이교도인 이방인인 이사람을 추천하며 사도 바을은 그들에게 엄중히 부탁하기를 합당한(최고의) 예절을 지키라고 부탁하고 있다.
무례히 행치 아니함. 왜 우리는 친해지면 말이 짧아지는가? 무례하면 사랑이 깊어지지 않습니다. 친해질 수록 더욱 배려하고 예의를 다하여야 한다. 무례함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닐 때 하던 삶의 방식이었다.
사랑할수록 예의를 다하고 배려해야 한다.(예절)
우리의 언어생활은 다른 사람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많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니까 한 사람은 구원한다는 심령으로 그것을 지켜야 한다.
누가복음 10장 36절,37절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이때 포도주나 기름은 현찰로 통용되었던 그때에 그는 상처 부위에 포도주와 기름을 부어서 1차 치료를 하였고 또 의원에 맡기며 치료를 한후에 모자라는 돈은 장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주겠다고 말하며 환자를 부탁함.
하나님의 세금 창고는 너무도 정확하여 반드시 하나님의 것을 찾으신다. 우리에게 10/9는 내가 먹고 쓴 후에 이웃과 나누라고 주셨다.
사마리아 사람이 그렇게 살았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돈은 나누라고 주셨다. 서로 사랑하는 것.
누가복음 10장 37절: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명령이고 계명이다. 우리가 이 말에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소망을 가지고 내가 살고 있는 주변부터 실천해 나가야 한다.
진짜 하나님의 부자 하나님을 소유한 자는 심판을 두려워 하고 자신의 것을 내놓아야 한다.
내 인생이라는 영적인 씨앗을 심어서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울창한 믿음의 숲을 이룬다면 내가 살아간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계명이라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이 땅이라는 감옥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죄수였는데 이런 우리에게 그분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복음을 전해주었다. 이 쉬운 것을 99%의 사람이 믿지 않는 이세상이다.
선택을 하더라도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었다. 만약에 있다면 우리는 영생토록 즐거울 수 있다. 이보다 행복한 일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십계명 앞에 우리는 살아있을 자가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의 모든 형이 집행 되었고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었으니 이를 반드시 지켜야한다. 이것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이 말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표지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성경을 10개로 압축한 것이 십계명이고 십계명을 하나로 압축한 것이 본문의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서로 사랑하라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
이세대들이 할 일은 그 이전의 세대들을 공경하는 일이다.
어른을 존경하고 공경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품어야 할 법이다.
이 상황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고 있는 세대들에게 우리는 격려하는 세대가 되어야 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더라도 감사와 칭찬으로 격려해야 한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는 아낌 없는 투자를 해야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법이다.
법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도덕심을 자랑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지켜야할 사랑의 방법이다.
로마서 16장 1절,2절
서로 사랑하는 두번째 방법은 예절을 지키자.
뵈뵈라는 이교도인 이방인인 이사람을 추천하며 사도 바을은 그들에게 엄중히 부탁하기를 합당한(최고의) 예절을 지키라고 부탁하고 있다.
무례히 행치 아니함. 왜 우리는 친해지면 말이 짧아지는가? 무례하면 사랑이 깊어지지 않습니다. 친해질 수록 더욱 배려하고 예의를 다하여야 한다. 무례함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닐 때 하던 삶의 방식이었다.
사랑할수록 예의를 다하고 배려해야 한다.(예절)
우리의 언어생활은 다른 사람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많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니까 한 사람은 구원한다는 심령으로 그것을 지켜야 한다.
누가복음 10장 36절,37절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이때 포도주나 기름은 현찰로 통용되었던 그때에 그는 상처 부위에 포도주와 기름을 부어서 1차 치료를 하였고 또 의원에 맡기며 치료를 한후에 모자라는 돈은 장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주겠다고 말하며 환자를 부탁함.
하나님의 세금 창고는 너무도 정확하여 반드시 하나님의 것을 찾으신다. 우리에게 10/9는 내가 먹고 쓴 후에 이웃과 나누라고 주셨다.
사마리아 사람이 그렇게 살았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돈은 나누라고 주셨다. 서로 사랑하는 것.
누가복음 10장 37절: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명령이고 계명이다. 우리가 이 말에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소망을 가지고 내가 살고 있는 주변부터 실천해 나가야 한다.
진짜 하나님의 부자 하나님을 소유한 자는 심판을 두려워 하고 자신의 것을 내놓아야 한다.
진주에서 1시간 40분 소요되어 거제 저구항에 도착하여 8시 30분 배를 탔습니다. 1인 편도 11000원의 배삯인데 왕복은 20000원입니다. 35분만에 소매물도에 도착하였습니다.
소매물도는 위락시설이 없어서 먹을 것을 가지고 들어가야합니다. 걸어서 소매물도를 지나 바닷길 열린 곳을 통과하여 등대섬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소매물도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입은 옷 그대로 다시 배를 타고 거제 여차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긴 뒤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 팔이랑 다리가 빨갛게 익고 힘도 많이 들었지만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작년에 비해 올해는 유난히 나비가 눈에 띈다.
나비 날개 팔랑 거리는거 보면 그 가벼운 날개짓이 애처로와 보이기도 한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벌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날 저무면 꽃잎에 쉬어 가자
꽃잎이 푸대접 하거들랑 나무 밑에 쉬어 가자
나무도 푸대접 하거든 풀잎에서 쉬어 가자
나비야 청산 가자 나하고 청산 가자.
가다가 해 저물면 고목에 쉬어 가자.
고목이 싫다고 뿌리치면 달과 별을 병풍 삼고
풀잎을 자리 삼아 찬이슬에 자고 가자.
껌 씹을 때마다 자기도 풍선 불어 보고 싶다고 말해서 가르쳐주긴 했지만, 껌으로 풍선을 도통 만들지 못하던 서하빈 어린이가 드디어 풍선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불어댔는지 풍선 만들었다 미쳐 떨어지지 못한 껌들이 코잔등에 볼에 여기저기 붙어 있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혼자 힘으로 해내게 되었을 때의 그 자부심 가득한 얼굴.
아이의 흥분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TAG 풍선껌
예배를 통해 내 인생의 먼길을 한번쯤 내다보고 다시 길을 가기.
'유머를 가진 자-자기 자신을 낮추어 남을 즐겁게 하는 자.'
후세가 그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그 삶의 됨됨이를 판단하기도 한다.
본문의 나오미라는 여인은 사람 앞에 인정을 받는 사람,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오미가 아들들을 데리고 모압지역으로 이민을 가지만 그곳에서말룐과 기룐 두 아들은 모압여인 오르바와 룻 이라는 아내를 얻지만 집안의 남자들이 후사도 없이 모두 죽어버린다. 그래서 자신의 유대땅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때 두 며느리를 돌려보내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고대 사회에서는 아들과 딸이 좋아해서 하는 결혼이 아니라 아내를 지참금을 주고 샀기 때문에 돌려 준다는 것은 사실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오미가 며느리 덕이나 보고 살자고 데리고 있어도 아무 문제가 될 일이 없는 것이었다. 나오미의 말을 들은 두며느리의 반응은 어머니를 다르겠다고 하였다. 나오미는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은 일을 하였다.이에 룻도 지지 않았다. 나오미가 아들이 없음을 강조하며 가라고 강권한다. 이에 오르바가 집으로 돌아가고 룻은 그래도 남겠다고 고집한다.
이에 나오미가 네 동서도 갔으니 너도 가라고 하였을 때 룻은 1장 16절,17절 의 말씀처럼 나오미와 함께 갈 것임을 주장하였다.
(교회안에서 믿음 생활을 하면서)나오미와 룻은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지나 온길을 되돌아 보고 내가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한다.
나는 과연 생명의 길을 가고 있는가? 내 안에 썩은 시신만을 담은 채 관처럼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살아가고 있는가? 죽어가고 있는가?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다.고백한 사도 바울의 신앙이 나의 신앙이 되도록...
나는 살아가고 있는가 죽어가고 있는가?
나오미와 룻의 이 싸움을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경쟁적으로 한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룻이 이삭을 많이 주워오는 것을 보고 룻의 이야기를 들은 나오미는 남이 생각지 못한 일을 하게 된다. 보아스의 발치에서 잠을 자게 한다.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에게 시집보내고자 한다. 나오미는 룻이 떠나면 자신은 굶어 죽을 판인데도 룻을 보내게 된다.
보아스와 결혼한 룻은 오벳을 낳게 된다.나오미는 이 일이 되어가는 경과를 보고 아마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아들을 낳은 룻은 아기를 안고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간다. 나중에 이 아이는 다윗왕의 할아버지가 된다.
베레스(다말의 아들,유다와 다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족보에 라합에게서 보아스가 나오고...
생명을 선택한 룻의 선택에서 그리고 라합의 아들 보아스의 선택에서 ...
생명의 선택에서 다윗왕이 나오고 예수그리스도가 나온다.
다말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고 룻의 집안이 내 집안이고... 그래서 우리는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다.우리는 서로 배경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ㄷ다르고 선악의 개념이 다르지만 우리가 바라는 기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싸움을 싸우되 생명을 선택하는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다. 남을 이기지 마라.
스스로 속이지 마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
남편을 바보 취급하는 그 집안의 그 아들도 똑 같은 취급을 받는다.
나는 엎드려 은혜를 받는다.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룻기를 읽고 명문가정 되도록 말씀을 묵상하라.
'유머를 가진 자-자기 자신을 낮추어 남을 즐겁게 하는 자.'
후세가 그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그 삶의 됨됨이를 판단하기도 한다.
본문의 나오미라는 여인은 사람 앞에 인정을 받는 사람,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오미가 아들들을 데리고 모압지역으로 이민을 가지만 그곳에서말룐과 기룐 두 아들은 모압여인 오르바와 룻 이라는 아내를 얻지만 집안의 남자들이 후사도 없이 모두 죽어버린다. 그래서 자신의 유대땅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때 두 며느리를 돌려보내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고대 사회에서는 아들과 딸이 좋아해서 하는 결혼이 아니라 아내를 지참금을 주고 샀기 때문에 돌려 준다는 것은 사실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오미가 며느리 덕이나 보고 살자고 데리고 있어도 아무 문제가 될 일이 없는 것이었다. 나오미의 말을 들은 두며느리의 반응은 어머니를 다르겠다고 하였다. 나오미는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은 일을 하였다.이에 룻도 지지 않았다. 나오미가 아들이 없음을 강조하며 가라고 강권한다. 이에 오르바가 집으로 돌아가고 룻은 그래도 남겠다고 고집한다.
이에 나오미가 네 동서도 갔으니 너도 가라고 하였을 때 룻은 1장 16절,17절 의 말씀처럼 나오미와 함께 갈 것임을 주장하였다.
(교회안에서 믿음 생활을 하면서)나오미와 룻은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지나 온길을 되돌아 보고 내가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한다.
나는 과연 생명의 길을 가고 있는가? 내 안에 썩은 시신만을 담은 채 관처럼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살아가고 있는가? 죽어가고 있는가?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다.고백한 사도 바울의 신앙이 나의 신앙이 되도록...
나는 살아가고 있는가 죽어가고 있는가?
나오미와 룻의 이 싸움을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경쟁적으로 한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룻이 이삭을 많이 주워오는 것을 보고 룻의 이야기를 들은 나오미는 남이 생각지 못한 일을 하게 된다. 보아스의 발치에서 잠을 자게 한다.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에게 시집보내고자 한다. 나오미는 룻이 떠나면 자신은 굶어 죽을 판인데도 룻을 보내게 된다.
보아스와 결혼한 룻은 오벳을 낳게 된다.나오미는 이 일이 되어가는 경과를 보고 아마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아들을 낳은 룻은 아기를 안고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간다. 나중에 이 아이는 다윗왕의 할아버지가 된다.
베레스(다말의 아들,유다와 다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족보에 라합에게서 보아스가 나오고...
생명을 선택한 룻의 선택에서 그리고 라합의 아들 보아스의 선택에서 ...
생명의 선택에서 다윗왕이 나오고 예수그리스도가 나온다.
다말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고 룻의 집안이 내 집안이고... 그래서 우리는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다.우리는 서로 배경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ㄷ다르고 선악의 개념이 다르지만 우리가 바라는 기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싸움을 싸우되 생명을 선택하는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다. 남을 이기지 마라.
스스로 속이지 마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
남편을 바보 취급하는 그 집안의 그 아들도 똑 같은 취급을 받는다.
나는 엎드려 은혜를 받는다.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룻기를 읽고 명문가정 되도록 말씀을 묵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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