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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 해당되는 글 96

  1. 2010/10/10 보혈의 능력(출애굽기 12장 21절~28절)
  2. 2010/10/03 사라의 미소 (창세기 21장 1절 ~7절)
  3. 2010/09/19 나를 부르신 이유 (로마서 8장 28절)
  4. 2010/09/19 나를 만드신 이유 (로마서 8장 28)
  5. 2010/09/12 자기 존중 (사무엘상 2장 30절)
  6. 2010/09/05 영원한 말씀II (시편19장 1절~14절)
  7. 2010/08/29 영원한 말씀 (이사야 4장 6절~11절)
  8. 2010/08/22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사무엘상 16장 7절)
  9. 2010/08/15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로마서 12장 1절~2절)
  10. 2010/08/08 우리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
  11. 2010/08/01 삶의 두 길 ( 룻기 4장 13절~17절)
  12. 2010/07/25 소망은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19절~26절) -교육학 박사 홍명유목사님
  13. 2010/07/18 마음을 지키며 생활하라 (빌립보서 4장 1절~7절)
  14. 2010/07/11 성소 (출애굽기 25장 1절 ~9절)
  15. 2010/07/11 인생열매 (요한복음 15장 6절 ~11절)
  16. 2010/07/04 기적을 창조하는 능력 (마태복음 14장 13절~21절)
  17. 2010/05/30 은총을 선택하라 (신명기 30장 15절~20절)그 모든 길로 행하며
  18. 2010/05/16 성령 충만한 삶(요한복음 16장 7절~8절)
  19. 2010/05/09 채우는 삶(열왕기하 4장 1절~7절)
  20. 2010/04/04 인도받는 삶(출애굽기 13장 17절~22절)
  21. 2010/03/21 가난한 자의 하나님(출애굽기 22장 21절~27절)
  22. 2010/03/07 서로 종노릇하며 생활하라(요한복음 8장 31절 ~36절)
  23. 2010/02/28 이렇게 준비하라 (고린도후서 9장 1절~8절)
  24. 2010/02/21 감사찾기 (마가복음 5장 21절~43절)
  25. 2010/02/07 예배로 축복을 받으며 생활하라(창섹기 22장 9절~19절)
  26. 2010/02/07 예배로 축복을 받으며 생활하라(창세기 22장 9절~19절)
  27. 2010/01/31 하나님의 부르심(예레미야 1장 4절 ~10절)
  28. 2010/01/24 생명의 중요성(출애굽기21장 12절~27절)
  29. 2010/01/17 "종에 대한 규례"(출애굽기 21장 1절~11절)
  30. 2010/01/17 소년 예수(누가복음 2장 41절 ~52절)

보혈의 능력(출애굽기 12장 21절~28절)

2010/10/10 12:02 | Posted by 미소1004
왜 하나님이 다소 이런 성가신 명령을 주셨는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산 기간은 400년.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화 되어있었다. 그들은 이미 애굽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월'은 '뛰어넘는다.'는  뜻인다.
죄에 대한 벌은 '죽음'인데 큰죄를 지은 사람은 '큰 죽음'을 작은죄를 지은 사람은 '작은 죽음'을 당하게 된다. 어찌 되었든 죽음이라는 흉칙한 형벌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회는 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받기위해   모인 곳이다. 지금이 순간도 우리는 한가지 한가지 죄를 씻고 있는 중이다.
이스라엘 백성도 지금 아주 중요한 명령을 받았는데 양을 잡아 문지방의 좌우에 바르게 하시고 그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심판을 하시는데 피가 있는 곳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지났음을 알고 넘어가고 피가 없는 집에는 피를 흘리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이말은 장로들에게 주어졌고 온 이스라엘에 알려졌고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은 새로운 달력을 가지게 되었다.훗날 4000년이 지난 시절에 예수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시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개인에게 들어오면 우리 개인의 나이가 새롭게 기록되게 되어진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아직 성도의 길을 가지 않은 사람이다. 무엇보다 먼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마암아 죄사함을 받고 그 피를 사모하고 예수님을 만나야만 한다. 말씀 안에 거하면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모든 문제가 해결함 받게 될 것이다.
이 세상 살아가며 어느 한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와 허물을 가리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죄를 사해 주시는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를 반드시 만나야 한다. 반드시...
일체의 다른 공로 자랑하지 말고 우선순위에 있어 예수 만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빌라도는 나사렛 예수가 죄가 있나 없나 하는 것을 가려내야했는데 그는 이 문제를 무리없이 해결하고자 심문하였으나 죄를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다.'이 사람은 죄가 없다'고 선언하며 그는 자신은 죄가 없다고 대야에 물을 받아 손을 씻었다.
예수를 핍박하고 침뱉고 옷을 나누었던 군인들도 예수는 진실로 의인이었다고 고백하였다. 의인이 왜 죽는가? 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나. 유월절의 율례를 이루시기 위함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왜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는 외면하셨는가? 출애굽기 12장의 축제의 의미를 완성하기 위함이다.
사건이라는 것은 내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는 성도는 어떻게 해야할까?
사건과 인생을 동일시하면 않된다.
출애굽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놓여있는 홍해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개인이 직면한 사건은 피할 수 없다. 어느 누구나 사건을 임하게 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가지를 가르쳐주시고자 함이었다.

1.사건의 해석이었다.
'꿈보다 해몽'.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눈치밥을 먹고 살다보니 사건하나만 터지면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팔을 들어 바다를 가르라 하셨다. 자신들은 거넜지만 애굽의 병거는 몰락하는 것을 보았다.
요셉은 해석의 달인이었다. 그는 어떠한 사건이 자신에게 찾아 올지라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는 꿈이 있으니 어떤 사건이 궂은 모습으로 올지라도 그 일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있을 때에도 홍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아닌 애굽 사람을 수장시킬 곳이라 생각하였다.
좋은 해석을 잘 달아서 다른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예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 귀에 들린대로 행하리라."하신 하나님의 말씀.
해석의 달인.

2.반응 보이기
좋은 반응
표현, 반응을 보여 주어야 한다.
나를 보고 반응을 보이는 부모를 통해 아이들은 사랑을 표현하고 반응을 한다.
성경대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사건을 보며 반응을 잘 해야한다.  
좋은 반응, 긍정적인 반응
좋은 반응이 가식이라고 느껴지더라도 하라.
축복을 연습하라.
주름을 인상쓰는 주르이 아니라 웃는 주름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결단코 가식이 아니다.
반응하여 축복받는 크리스쳔이 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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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보혈

사라의 미소 (창세기 21장 1절 ~7절)

2010/10/03 11:57 | Posted by 미소1004
말은 여러가지 다른 말을 할 수 있는데, 표정은 어떻게 속일 수 없다.
교회가 무엇이 이뻐서 복을 주시는 것일까? 축복의 통로는 따로 있다. 축복의 통로가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 내가 그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말을 통해 우리의 운명이 바뀐다.
하나님께 축복을 심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심는 많은 말을 하라. 말로 은혜를 심는 많은 말을 하라.
말보다도 더 중요한 표현 방법이 있으니 그것이 '얼굴(얼의 꼴)'이다. 대화를 나누지 ㅏ않아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인상'이다.
'첫인상'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이 93%라고 한다. 빛으로만 살면 내가 전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몰리게 되어있다.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영혼을 구원하는 소중한 가치이다.
본문에서 주목해서 보아야할 인물이 '사라'이다.
그녀는 얼굴이 곱고 예뻤다. 얼마나 이뻤는지 90세가 되어도 그 아름다움이 떠나지 않았다. 기근이 들어 아브라함이 애굽에 갔을 때 애굽왕이 한눈에 반해 그를 아내로 삼을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늙으막에 블레셋에 갔을 때도 그 나라의 왕이 그녀를 아내 삼고자 할 정도였다.
그렇게 이뻐도 사라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 집안에 대를 이을 자식이 없어서 행복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75세 때에 후손을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본토를 떠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자식을 주지않자 자신의 종 하갈을 남편에게 주어 자식을 얻고자하였다. 그후에 하갈이 임신을 하여 사라를 멸시하였다. 성경은 기록하기를 '하갈이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하였다 '고 기록하고 있다. 사라는 자신의 소유인 종 하갈이 자식을 낳으면 자신의 아들이 될 줄 알았는데 아이는 아브라함과 하갈의 소유이지 자신의 아들이 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 쫒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대로 그들을 내쫓아야만 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보면 그보다 불행한 일이 없었다. 사라의 예쁜 얼굴에 근심 걱정 한과 괴로움만 있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찾아오셔서 "아들을 주겠노라."하셨다. 그때 두사람이 고개를 숙여 웃었다. 하나님이 사라에게 왜 웃었냐고 물으시자 사라는 웃지 않았다고 변명한다. 
25년동안 아브라함을 가라고 하신 하나님은 정작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따라 다니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따라 다닌 것이 아니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행동하셨는가?
웃음의 논쟁이 있은 후에 90세 할머니가 배가 불러왔다. 그것을 보며 사라가 생각하기를 25년전과 작년에 이말씀 하실때는 배가 아무 변화가 없더니 왜 지금은 베가 불러오는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묵상을 하는 중에 사라의 의문이 풀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화가 없는데 변화가 있었다면 자신의 표정 변화였다.
늘 우울했던 사라가 아들을 주리라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웃었던 그 후에 자신의 인생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원하시는게 있다면 나의 표정 변화이다. 천국의 백성이고 영생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우리들인데 하나님은 가보지도 않고 자꾸  믿기지도 않는 천국을 자꾸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따라 다니면서  원하지도 않는 축복을 자꾸 이야기 하고 미래의 축복을 이야기 하실까?
부모의 열린 마음과 열린 몸이 있었기에 내가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부터 떨어지는 씨앗이고 우리는 옥토이다.
사라의 경우는 25년전에 사라에게 씨앗을 주셨는데 그말씀을 받았을 때 혹시라도 그 마음에 기쁨이 생길 줄 알았는데 사라는 그러지 못하였다.
우리 교회의 운명은 우리의 표정에 달려있다.웃음도 언어이다. 낯선 언어는 자꾸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우리 나라보다 더 기구한 운명을 가진 나라가 유대인들이다. 그렇게 고난 받은 그들이 전세계에서 굳건 할 수 있는 이유는 '나는 웃음을 잃지 않았던 사라의 후손이다.'라는 신념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혜를 배우되 웃음을 함께 배웠던 민족이다. 위기 가운데도 웃음을 잃지 않으면 하나님이 살길을 주신다. 
웃는 사람의 웃음 소리만 들어도 사람은 행복해진다. (전원주의 이야기)
 웃음의 언어
웃음부터 배우라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내 마음에 웃음이라는 꽃으로 화답하지 않으면 열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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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신 이유 (로마서 8장 28절)

2010/09/19 14:56 | Posted by 미소1004
나폴레옹이라는 사람은 황제가 되기 위해 프랑스의 젊은이 50만명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고 그리고 다른 나라사람 50만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오직 그의 야망을 위해. 말년에 그또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반면 팔삭동이로 태어난 윈스턴 처칠은 50년동안 공직생활을  하다가 영국의 수상이 되어 91세 생을 마감하기 까지 부정부패에휘말린 적이 없고 그의 말과 글은 영국인의 자존심이 되었다. 그는 돈이 않좋았을까?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적은 없었을까?
미련이 있으면 그것에 넘어가게 되어있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 자동적으로 영생을 얻게 되었는데 이 파이프라인이 우리 인생에 들어왔지만 이것을 내 삶에 연결되어있지 않아서 하늘나라의 물이 공급되지않아 우리가 이미 길어놓았던 양동이의 물만 사용하고 있기에 고갈되어진다.
예수님은 공중의 새와 들풀을 보고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주님은 생각 짧은 자를 믿음이 적은자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고 나에게 요구하시는 수준이 있는데 성공을 위해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순종'하게 하시기 위해 나를 부르셨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교회는 순종을 가르치는 학교'이다.
성경에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요구하신 것은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명령에 대한 순종이었다. 주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하는 것이 베드로가 해야할 순종이었다. 나중에 예수님은 지금은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띠띠고 다니지만 나중에는 네가 양팔을 벌려 네가 원치 않는 곳으로 가게되리라 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순종이란 무엇인가?
'상황에 대한 순종'(찬송38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인도하시니~ 이 찬송의 작사가 F.J.크로스비 는 장님이었다.
영생을 소유한 사람의 모습은 대개 엉뚱한다. 세상의 가치와 다르다. 그들이 만난 하나님, 그들이 경험한 영생의 세계는 우리가 모른다. 모든 상황을 하ㅏ나님의 손길로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 아무나 그길을 갈 수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한 자 만이 갈 수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일이 성사되지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막으시는 것이다 왜 나는 그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이기에.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지켜볼 줄 아는믿음. 때로 우리 인생에 걸림돌이  있고 안개가 있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섭리를 가지고 있음을  믿고 의지하라.
우리는 영운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고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내 옆 사람에게 영원을 나누어주고 영원을 선물할 수있는 사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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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드신 이유 (로마서 8장 28)

2010/09/19 11:54 | Posted by 미소1004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룻의 삶에 대한 깊은 묵상.
작은 마을 비천한 모습으로 살았지만 룻의 마음속에는 세계가 들어있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믿음이 있었다.
내 후손 내 이후의 자손에게 나는 행복과 유익을 어떻게 끼칠것인가?
죽은 자들에 대한 걱정으로 노심초사할 필요는 없다. 세상의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간다고도 하고 인간이 늙어가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라고도 말을 한다. 얼마남지 않은 인생을 바라보며 한숨 짓는 것으로 인생을 바라보기도 한다. 예수믿을 때나 예수믿지 않을 때나 인생을 바라볼때 이런 똑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믿음이 얼마나 허망한가. 우리가 시간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시간을 주자하고 시간을 선용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야 한다. 구원이란 시간으로부터 건짐을 받는다는 것이다.
남강물을 바라보고 '물이 흘러가는 구나! 시간이 흘러가는 구나!'가 아니라, 지는 태양을 보고 "시간아 멈추어라 ,태양아 멈추어라"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수 믿었다는 것은 시간을 잡았다는 뜻이다.
인생이 짧다고 하는 사람의 기준은 세상에서 내가 쾌락을 누리고 정욕대로 살기가 짧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33년의 인생을 살며 결혼도 하지않고 신성모독이라는 죄모ㅗㄱ을 쓰고 산챌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은 죽으면ㄴ서 마지막말로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다.그는 시간이 짧다는 말을 하지않았다. 위대한 신앙 인물들이 모두 기운이 다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첫째 이적 혼인잔치의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그 기적은 시간을 에수님이 쥐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적이다.
벳세다 광야에서 장정만 오천명을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먹였던 기적은 시간을 그가 쥐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마르틴 루터는 600페이지 이상되는 책을 100권 남겼고 그외 소책자는 이루말할 수 없다. 그러고도 그는 결혼하고 자식도 낳았다. 현대의 사람이 독일어로 평생 옮겨 쓰는것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헨델의 작품은 현재 사람이 그의 악보를 옮겨쓰기 위해 오선지를 긋는대도 평생을 그려야 한다고 한다.
예수님 루터 헨델 바흐의 삶과 일반인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였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인생을 허무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시간을 통제할 수없다는 좌절감에서 오는 고백인 것이다.
우리의 말하는 폼새가 나오미와 같고 룻과 같아야 한다. 탐욕을 취하는 인생은 얼마남지 않았으니 더 움켜쥘려고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탐욕스러워 지는 것이다.
다윗이 나이들었을 때에 신하들이 아리따운 동녀 아비삭을 구하여 다윗의 연수를 더욱 연장시키고자 하였을 때 그는 아비삭과 동침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되었다. 젊은 날의 실수가 선으로 바뀌었다. 이제라도 영생을 소유한 사람의 생각과 언행을 품어야한다. 만일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았는데  그는 예수가 여럿사람을 멸절시킬거을 기대하였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모든이 함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제 부터는 믿음으로 영원을  소유한 자 답게 살아야한다 더 멀리 더 깊게 더 높이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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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존중 (사무엘상 2장 30절)

2010/09/12 11:56 | Posted by 미소1004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인간은 어찌하든지 간에 그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우리 육신을 깎아 먹고 살며 육신을 허비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 사람이 떠났음에도 그 사람의 인생이 부각되고 여러사람이 그 헤택을 누리게 된다면 사람은 그것으로 자신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내 속에 생명이 있는가 보라 살아서도 생명이 보이지 않는 존재가 죽어서 생명을 가진다는 것은...
 죽은 번데기에서 무슨 나비를 기대하겠는가? 앞으로 나비가 될것인가 그냥 썩어질 것인가 판단하는 것은 그 안의 생명이다. 그생명이 있어야 내가 죽어도 생명으로 살게 될것이다.
이따금 영혼이 없어 보이는 존재를 보게된다. 하지만 그전에 내 속에 생명이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룻'이라는 여인! 그 여인이 어떻게 살았기에 그 속에서 다윗이 나오고 예수가 나왔는가?
다윗이 나오기 전에 룻에게 다윗의 영성이 있었다. 생명이 있었다.
룻에게서 나오미와의 대화와 그 후에 일을 결정하는 모습을 보고 그 여인의 생명을 확인할 수 있다.
나오미가 룻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하였을 때의 룻의 대답. 나오미와 룻의 영성을 돌아 볼 줄 알아야한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겁게 받아 줄 아는 사람이고 또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한나'라는 사람
그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믿음 가운데 가슴 가운데 있는 생명을 보셨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
한나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 고 서원하고 아들을 얻었을 때, 누구보다도 기뻤던 사람이 엘가나 였을 것이다. 한나가 젖을 뗄즈음에 아들을 엘리에게 드리고자 남편 엘가나에게 말하였을 때에
"사무엘상 2장 11절 엘가나가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율법적으로 아내가 서원한 것을 남편이 거절할 수 있었으나 그는 자식을 보내고 돌아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내가 권리행사 할 수 있고 내가 거부할 수 있고 내가 말씀에 순종하여 돌아설 수 있는 것이  것이 생명이다.
내가 형통할 때도 내가 공포스러울 때 답답할 때 드렸던 절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생명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처국에서 왕노릇할 사람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단심가를 부를 수있는 사람 그 사람이 그러하다. 엘가나가 그러하였고 룻이 그러하였다.
그 생명이 나에게 있기를 기도하라.
자신을 극도로 억압하고 제한하며 살 수있는 사람.
지금 우리는 자신을 깍고 있다. 조각가이신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릴수 있어야한다.
우리의 생명을 깍아 타인에게 줄줄 아는 사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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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말씀II (시편19장 1절~14절)

2010/09/05 11:59 | Posted by 미소1004
'웃사'라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가지게된 하나님에 대한 오만한 태도가  결국은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받을 때 정상적인 경주를 하나님 앞에 해야 한다.
마태복음 4장에는 예수님이 40일  금식한 후에 시험 받으시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예수님이 아주 민감하게 받아들이신다. 사탄은 배고프니까 이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그것을 먹으라고 말한다. 이에 예수님은 상당히 까칠하게 대답하시는데,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것이라"하시는데 어떻게 보면 이말씀은 기독교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이는 역사성이 있다.
이는 4000년 전에 뱀이 하와에게 나타나 선악과를 먹으면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며 하와를 꾀는데 그말을 들은 하와가 선악과를 보니
"보암직하고 먹음직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한지라"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후 남편도 먹게 하였다. 그후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고통속에서 태어나며 힘겹게 살아가며 절망가운데 죽어야 했다.
그후에 하나님이 인간을 불쌍히 여겨 제2의 아담 에수님을 보내주셨는데
이에 사탄이 나타나 주려있는 예수님 앞에
독사 전갈이 있는 광야에서 더 강력하게 나타ㅏ나 예수를 시험한다.
이는 바로 첫사람 아담이 받았던 유혹이었다. 첫번째 실패를 만화하고자 하는 주님의 뜻이 있다.
왜 돌덩이를 떡으로 만들라고 하였나?
우리도 이것을 동일하게 시험을 받고 있는데 이 시험을 통과해야 하늘나라 갈 수 있다.
돌멩이! 예수님은 자신을 늘 돌멩이에 비유하셨다. 하늘로서부터 내려온 돌이라 하셨다.성전의 모퉁이 돌이라 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산돌'이라고 표현하신다. 우리는 지금 말씀의 '돌'을 맞고 있다.
돌멩이가 자신의 심경 골수를 찔러 쪼개고 있다.
사탄은 돌멩이를 변하여 떡덩이가 되게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표피적인 감각을 즐겁게 하는 용도롤 사용하고자 하는 시험이 바로 이 시험이다. 왜 돌멩이를 던지느냐고 하나님께 항의하지 마라. 이 돌멩이가 우리 영혼의 심해에 던져져 영혼이 부서지고 회복되는 역사가 있어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아프고 속이 부글부글 끓으면 그것은 제대로 말씀이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돌멩이를 맞은 것과 같다. 머리안아프게 해주세요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하나님게 말하지 말고 말씀을 듣고 통곡의 소리가 있어야하며 탄식의 소리가 있어야한다.
  
말씀을 들었을 때 통회하고 자복하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마타복음 4장에는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가 있다.
옥토는 씨앗이 떨어지면 씨앗을 품는다. 씨앗을 품는다는 것은 씨앗에게 수분을 주고 자신이 가진 모든 영양분을 씨앗에게 준다. 하지만 다른 밭은(길가, 돌짝밭, 가지밭) 씨앗이 자라지 못한다. 자신의 것을 내주지 않는다면 씨앗은 자라지 못한다. 옥토는 모든것을 씨앗에게 주고 그것을 위해 살게 된다. 그런데 옥토 가 씨앗에게 모든걸 주니까 그씨앗이 옥토를 변화시키는데 이제는 그 이름이 변하게 된다. 그 밭이 밀밭이 되고 보리 밭이 된다. 그 밭의 이름이 바뀌고 황금 물결이 출렁이는 대지가 된다. 너희가 나를 믿느냐 그렇다면 내 말이 들릴때에 말씀 따라 살겠다고 다짐하고 결단하면 얼마지 않아 그 사람의 삶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결실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살았다면 우리는 천국의 향유의 향기로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저 왔다 가는 인생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인생을 살기를 원하신다.
돌짝밭의 돌은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신념 고집의 돌이다. 이것을 들어내지 않으면 옥토가 될 수없다.
가시라는것 나의 명예 면류관 같은거라서 그것을 벗어내리지 않는다면 하나남의 말씀이 자라지 못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마지막을 말씀해 주셨다.
베드로는 그 자신의 고집이 강한 고집덩어리였다. 그가 말씀받고 변화되었다.
우리무리 가운데도 변화되지 못한 베드로가 많다.
변화된 베드로는 풋내기 사도에게 질책을 받아도 일절 변명하지 않았다. 복음은 자신의 의지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우리가 몰라서 무지해서 자신의 의지와 신념과 의견을 주장하는데 이곳은 강도의 굴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곳이 교회이다.옥토라는 곳이 그런곳이다.내가 품으면 나중엔 그 말씀이 나를 품어 줄것임을 믿는다.나중엔 그 이름조차 바뀌게 될 것이다. 내가 그 말씀대로 살아보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더라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사독이 다윗을 위해 레위인들로 하여금 법궤를 가져오게 하였는데 다윗은 이에 대해 사독에게 엄히 명령하기를 제자리에 가져다 두고 레위인은 그 법궤를 지켰다.
법궤를 거기에 두신것은 하나님이 뜻이 있어 그곳에 두셨으며 하나님이 나를 도망하게 하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 말한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시는 그곳에 가서 아멘 하는 그 성도가 옥토인 것이다. 
내 스스로가 나를 경영하고자 하면 남는 것은 허망함  밖에 없다.
레이건 대통령이 저격 당할 당시  경호원들이 몸을 날려 대통령을 지킬수있었던 이유는 부담한 연습이었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는 이유는 나를 위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말씀을 지켜내야 한다. 세상에서 날아오는 멸시 천대의 총알을 받아야한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
구원받은 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사용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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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말씀 (이사야 4장 6절~11절)

2010/08/29 12:02 | Posted by 미소1004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는 것은 비둘기 같이 순결한 심령위에 성령이 임재한다는 뜻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8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8절)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이 모든 자연현상이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의 삶도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의  말씀으로 오늘의 나도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을 때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때 전쟁터에서 이스라엘군 4000병이 죽게되는 위기가 닥친다. 그때 전장에 장군으로 있던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실로에 안치되어 있는 법궤를 가져오고자 한다. 그들은 법계가 이스라엘의 위대한 하나님의 승리의 도구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레위 지파의 고핫자손들이 법궤를 메고 전쟁터로 나가게된다. 법궤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감격을 했는지 땅이 진동할 정도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이들의 반응과 상관 없이 블레셋군대는 전세를 몰아가고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법궤가 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3만명이 죽어나갔으며 장군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고 법궤마저 블레셋군에게 빼앗기며 군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가 목이 부러져 즉사하며 그의 자부가 사산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임제의 상징인 법궤가 이스라엘의 승리를 상징한다는 그들의 믿음은 가상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하나님은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지적해 주고 있다.
법궤는 부적이 아니다. 성경이 있으니 믿음이 있을 것이다는 착각을 하면 않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육비에 새길 뿐 아니라 심비에 새기라 하셨다. 하나님을 믿으니 우리집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말씀은 듣고 지키라고 주어진 것이지 부적처럼 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상처럼 부적처럼 사용하면 않된다. 성경을 잠잘 때 베고 누워자버리면 그 성경은 목침에 불과하다.성경은 부적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법궤가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는 이유는 듣고 순종하라고 지키라고 주시는 것이다. 말씀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된 것이라면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야한다는 뜻이다.
우선 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살피때 세상 가운데서 우리의 삶을 먼저 살피라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한편 법궤를 가져간 블레셋은 그들의 신전 다곤 신 옆에다 법궤를 가져다 두었는데, 다음날 다곤 신이 넘어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다음날은 앞으로 꼬꾸라져 있고 피괴되었으며 그 지역에 독동이 퍼져서 그들이 회의를 하여 법궤가 이유임을 찾아내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법궤를 이스라엘에 돌려주기로 결정한다.그들은 법궤를 수레에 실어서, 짐을 실어날라 본 적이 없고 젖을 떼지 않은 암소 두마리에 실어 벳세메스로 보내기로 한다. 그들이 가기는 가는데 그 소가 울면서 갔다. 마음도 갈마음이 없고 수레를 끌수 있는 기술이 없는 소 들이 그들이 베세메스로 곧장 갔다. 그것을 본 블레셋은 이스라엘 신은 당할 수가 없음을 인정한다. 이스라엘 땅이지만 블레셋의 지배를 받던 벳세메스 사람들은 수레를 몰고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게된다. 법궤를 본 벳세메스 사람들은 번쩍거리던 법궤를 들여다보고 열어보기로 결정한다. 모세 당시에 만들었던 법궤를 그 후에는 본적이 없었는데 그들은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에 뚜껑을 열었는데 여는 그순간에 즉시 70명이 그 자리에서 죽게 된다.
법궤 뚜껑을 열어서 죽게되었다. 그럼 법궤 그것이 무엇이라고 사람을 죽게 만드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복종하고자 하는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그들은 죽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벳 전투에서처럼 부적처럼 쓰여져도 책망받을 일이며
벳세메스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호기심으로 감탄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모두가 책망받을 일이다.
농부가 나무를 심어놓고 기쁜 것이 아니라 열매를 보아서 기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속에 말씀이 실천되어질때 순종되어 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그리하여 법궤는 기럇아르바의 아미나답이라는 사람의 집에 70년이나 보관을 하게 된다. 그 물건이 너무 무서운 물건이라 70년 동안이나 이곳에 보관되어진다. 그후에 이스라엘의 다윗왕이 웃사의 집에서 하나님의 법궤가 수레에 실려 이스라엘로 옮겨지게 된다. 제사장들이 왕에게 성경의 말씀대로 법궤의 네개의 고리에 꿰어 레위지파 고핫자손으로 메게 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웃사와 아효의 그들의 권위에  눌려 수레에 실은 채로 옮기게 된다. 그러다가 수레가 기울어져 나곤의 마당에서 법궤가 흔들리자 웃사가 법궤를 잡자 잡는 순간에 즉사하게 된다. 아효는 그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웃사가 법궤를 잡다는 히브리 원문 표현은 '내 소유처럼 여겼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웃사는 왕도 보고있고 백성이 보고 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꺼야 라고 하는 생가을 꾸짖으신것이다. 혹시 말씀을 내려다 보고 있지는 않는가? 내가 성경위에 있지는 않는가? 웃사가 손을 댄 것이 문제가 아니고 말씀에 대한 자세가 심각한 문제였다. 말씀을 독점적으로 소지하고 있으며 자신이 말씀을 전하는 자라 할지라도 말씀은 우리 위에 있어야한다. 교회의 주인은 절대 되어서는 않된다. 이곳이 하나님의 집인 것을 믿을 진대 이 곳에 있는 풀 하나 꽃 하나도 내 소유라 생각하면 않된다. 소유가 아니라 청지기로 살아야 한다.
어느 순간에 말씀에 함부로 손댔다가 웃사와 같은 벌을 받게 될 지 모른다.
다윗은 이 사건을 보고 웃사를 베레스 웃사라 하며 분노하였다. 다윗은 말씀 앞에 무릎꿇고 말씀 앞에 겸손해야겠구나 하고 분노하였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향해 화내고 분노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이 나에게 복주시고 하나님의 평강을 내려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부적도 호기심의 대상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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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사무엘상 16장 7절)

2010/08/22 12:01 | Posted by 미소1004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내가 죄인되었을 때 나를 선택하였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거저 주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를 살리셨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나의 나됨은 나의 의지로 된 것이 아니고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선택이자만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찾는 인생이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고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보시고자 하는 중심이 무엇일까? 이 중심은 나의 의지로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다윗의 중심을 보면서 그의 중심을 copy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에 합격점을 내리면 우리 인생에는 수많은 기회가 다가올 것이다.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만큼 하나님이 나를 들어 사용하실 것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노인도 꿈을 꾸고 소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윗의 중심 관리
하나님은 본문에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사울을 왕의 자리에 내치시고자 한다. 이때 새로운 왕의 재목을 봐 두었다 말씀하신다. 이에 사무엘이 라마에서 베들레헴까지 가서 이새의 아들 일곱명의 아들을 선보게 된다. 사무엘이 장자 엘리압을 보았을 때 그가 왕의 재목임을 인정하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며 일곱명을 모두 퇴짜 놓으신다. 모두 본 후에
말째 양지키는 다윗을 데려오게 한다. 성경에서는 그의 외모를 얼굴이 붉고 눈이 빼어난자 라고 기록하고 그를 보았을 때 사울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으로 다윗이 왕의 재목임을 알고 기름을 붓는다.

그렇다면 다윗의 중심이 어떠하길래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되었는가?
막내는 자신의 자유로움을 누리나 형에 의존하는 의존성을 가지게 된다. 대부분이 의존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책임의식에 한계를 가지게 된다.
기도 많이하고 예배 잘 드린다는 것이 중심인가?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중심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책임감을 인정 받은 것이다. 막내인 다윗은 형들이 단장 할 수 있도록 집으로 보내고 그는 양을 지키러 들로 갔다. 
여러운 일이 왔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그 사람의 관심사이다. 자신의 욕망을 내리 누릴 수 있는 힘, 자신이 낮아 질 수있는 힘 그것이 다윗의 내공이었다. 다윗의 위대함은 또 있다.골리앗이 쳐들어 왔을 때 위의 삼형제가 징집이 되었을 때 밀가루 한에바(한말 두되), 떡 10덩이, 치즈10덩이 를 전쟁터의 형들에게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그때 그가 가야할 그길은 60리나 되는 길을 가라고 하였다.  왜 다윗 혼자 이길을 가게 되었나? 이새는 위에 형들에게 맡기지 않았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일을 시키신다. 다윗은 60리의 길을 아무 불평없이  목이 빠지라고 그 길을 갔다. 다윗의 중심에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윗도 형들이 있음을 핑계할 수 있었지만 그리하지 않았다. 다윗은 위의 세대를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울은 미친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미치광이 왕 사울을 두번이나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를 죽일 수 없다하며 기회를 과감히 포기하였다. 의식에 있어 다윗과 같은 의식을 지녀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3세대가 살아가고 있는데 공경 받아야할 1세대와 공경 해야할 2세대와 투자 받아야할 3세대가 공존하고 있다. 다윗은 윗세대를 공경 할줄  아는 사람이었다. 
모압은 이스라엘의 원수의 나라이지만 그는 예를 갖추었다. 하나님이 세운 권위를 인정하였다. 내 눈에 가시같고 내눈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내려주신 권위를 인정하여야 한다. 
다윗은 자기 혼자 살기도 힘들었던 그때에 자신을 믿고 따르던 400명의 군사를 아둘람 굴에서 먹였다. 10년의 유랑생활을 하며 다윗은 모압 땅에서 미치광이 짓을 할 때도 있었고, 제사장의 떡을 얻어먹고 살 때도 있었고,포도 이삭을 먹을 때도 있었지만 그는 없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우리가 독립하지 못하면 우리는 중심을 하나님께 인정 받지 못한다.
다윗은 아둘람굴에서 400명을 데리고 그들과 생사를 같이 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이런 심성을 인정 받았다.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잡을 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기에 내가 죽어도 후회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공할 가능성이 없으면 옳은 일인데도 하지 않는가? 우리의 생명도 그 때 그시간에 우리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야한다.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던져야 할 때가 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우리 가운데 빼어나고 붉은 소년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해야한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왜 다윗을 선택하셨는지 기억하고 나에게 다윗을 본받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간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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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가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여전히 과거의 모습으로 그대로 매어 있는 것이 물질 문제이다.
금과 은 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는대도 그대로 물질 문제에 매여 있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 갑자기 온 세상을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있느니라" 내게 궁핍에 처할줄도 알고~ 사도 바울의 이 말은 어떤 상활 가운데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삶. 물질을 정복하라는 말씀이다. 물질을 쥐고 흔들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는 말이었다.
아브라함이  소돔사람을 구출하고 돌아왔을 때 소돔 왕이 많은 물질을 준자든 것을 거절하였다. 아브라함은 취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다는 권세가 있는 사람임을 보여 준 것이다. 그 영혼은 돈으로 사고 팔수있는 존재가 아닌 구너세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의 물질 때문에 기쁨 소망이 좌지우지 된다면 우리는 아직도 독립된 나라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행위적인 부분에서 우리가 독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독립국의 나라가 아니다.식민지 시대에는 경찰에 돌을 던지거나 비방한다거나 조롱한다거나 폭탄을 던지는 일이 옳은 일이었지만 독립을 한 후에는 그런 일이 옳지 않다 그러나 독립이 되었는데도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선지국과 후진국의 차이점은 화장실 문화에 있다.
후진국의 화장실은 끊임없이 화장실을 치우지만 더럽고 선진국의 화장실은 치우는 사람이 보이지 않지만  항상 깨끗하다. 선진국민은 자신이 자주민이므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자주의식이 있지만 나가서는 자주민이 아니다.
내가 머물다 간 자리에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어서는 안된다.
레위기서를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린 중요한 가르침이 있는데 그것은 그러한 땅의 주인이 되는 사람은 책임이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추수의 규칙을 만들어 주셨는데 이삭은 거두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주인의식 자립을 원하셨다. 자기가 먹을 것을 밭에 나가 이삭을 줍는 수고를 감당하라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축복의 원리이다.
우리는 독립된 백성답지 못하게 살아왔다.

의식의 독립("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
잘못된 줄 알면서도 끌려다니는 의식을 버리라.
의식의 독립
의식에 있어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의 의식을 보여줄 때 우리는 힘을 드러낼 수 있다.
우리는 정통기독교인으로 어떤 의식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가?
소금이 무엇인가? 조금만 넣어도 그 맛을 내는 것이 소금 아닌가? 기독교인의 힘이 어디 갔나? 잘못 되었으면 끝까지 덤벼야 한다.
의식의 독립!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매운 맛이 없어졌다.이게 아니라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고칠 수 있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있는 '체면'
대만이나 일본에서의 자전거 통근길은 70%를 차지하는데 우리나라는 거의 100%가 자가용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 민족이 광 나는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한없이 피곤한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기도하고 말씀보고 판단이 서면 그대로 행하라.
우리의 의식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결정을 짓고나서 뒤를 돌아보지 말고 가되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한다.
자녀를 의식적으로 행위적으로 어떻게 독립적인 존재로 키울 것인가?
 온실의 화초같이 모양만 있고 향기가 없는 존재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작자 표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 인생이라는 영적인 씨앗을 심어서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울창한 믿음의 숲을 이룬다면 내가 살아간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계명이라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이 땅이라는 감옥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죄수였는데 이런 우리에게 그분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복음을 전해주었다. 이 쉬운 것을 99%의 사람이 믿지 않는 이세상이다.
선택을 하더라도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었다. 만약에 있다면 우리는 영생토록 즐거울 수 있다. 이보다 행복한 일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십계명 앞에 우리는 살아있을 자가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의 모든 형이 집행 되었고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었으니 이를 반드시 지켜야한다. 이것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이 말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표지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성경을 10개로 압축한 것이 십계명이고 십계명을 하나로 압축한 것이 본문의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서로 사랑하라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
이세대들이 할 일은 그 이전의 세대들을 공경하는 일이다.
어른을 존경하고 공경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품어야 할 법이다.
이 상황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고 있는 세대들에게 우리는 격려하는 세대가 되어야 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더라도 감사와 칭찬으로 격려해야 한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는 아낌 없는 투자를 해야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법이다.
법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도덕심을 자랑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지켜야할 사랑의 방법이다.
로마서 16장 1절,2절
서로 사랑하는 두번째 방법은 예절을 지키자.
뵈뵈라는 이교도인 이방인인 이사람을 추천하며 사도 바을은 그들에게 엄중히 부탁하기를 합당한(최고의) 예절을 지키라고 부탁하고 있다.
무례히 행치 아니함. 왜 우리는 친해지면 말이 짧아지는가? 무례하면 사랑이 깊어지지 않습니다. 친해질 수록 더욱 배려하고 예의를 다하여야 한다. 무례함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닐 때 하던 삶의 방식이었다.
사랑할수록 예의를  다하고 배려해야 한다.(예절)
우리의 언어생활은 다른 사람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많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니까 한 사람은 구원한다는 심령으로 그것을 지켜야 한다.

누가복음 10장 36절,37절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이때 포도주나 기름은 현찰로 통용되었던 그때에 그는 상처 부위에 포도주와 기름을 부어서 1차 치료를 하였고 또 의원에 맡기며 치료를 한후에 모자라는 돈은 장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주겠다고 말하며 환자를 부탁함.
하나님의 세금 창고는 너무도 정확하여 반드시 하나님의 것을 찾으신다. 우리에게 10/9는 내가 먹고 쓴 후에 이웃과 나누라고 주셨다.
사마리아 사람이 그렇게 살았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돈은 나누라고 주셨다. 서로 사랑하는 것.
누가복음 10장 37절: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명령이고 계명이다. 우리가 이 말에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소망을 가지고 내가 살고 있는 주변부터 실천해 나가야 한다.
진짜 하나님의 부자 하나님을 소유한 자는 심판을 두려워 하고 자신의 것을 내놓아야 한다. 
 

 

저작자 표시

삶의 두 길 ( 룻기 4장 13절~17절)

2010/08/01 11:24 | Posted by 미소1004
 예배를 통해 내 인생의 먼길을 한번쯤 내다보고 다시 길을 가기.
'유머를 가진 자-자기 자신을 낮추어 남을 즐겁게 하는 자.'
 후세가 그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그 삶의 됨됨이를 판단하기도 한다.
본문의 나오미라는 여인은 사람 앞에 인정을 받는 사람,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오미가 아들들을 데리고 모압지역으로 이민을 가지만 그곳에서말룐과 기룐 두 아들은 모압여인 오르바와 룻 이라는 아내를 얻지만 집안의 남자들이 후사도 없이 모두 죽어버린다. 그래서 자신의 유대땅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때 두 며느리를 돌려보내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고대 사회에서는 아들과 딸이 좋아해서 하는 결혼이 아니라 아내를 지참금을 주고 샀기 때문에 돌려 준다는 것은 사실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오미가 며느리 덕이나 보고 살자고 데리고 있어도 아무 문제가 될 일이 없는 것이었다. 나오미의 말을 들은 두며느리의 반응은 어머니를 다르겠다고 하였다. 나오미는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은 일을 하였다.이에 룻도 지지 않았다. 나오미가 아들이 없음을 강조하며 가라고 강권한다. 이에 오르바가 집으로 돌아가고 룻은 그래도 남겠다고 고집한다.
이에 나오미가 네 동서도 갔으니 너도 가라고 하였을 때 룻은 1장 16절,17절 의 말씀처럼 나오미와 함께 갈 것임을 주장하였다.
(교회안에서 믿음 생활을 하면서)나오미와 룻은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지나 온길을 되돌아 보고 내가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한다.
나는 과연 생명의 길을 가고 있는가? 내 안에 썩은 시신만을 담은 채 관처럼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살아가고 있는가? 죽어가고 있는가?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다.고백한 사도 바울의 신앙이 나의 신앙이 되도록...
나는 살아가고 있는가 죽어가고 있는가?
나오미와 룻의 이 싸움을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경쟁적으로 한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룻이 이삭을 많이 주워오는 것을 보고 룻의 이야기를 들은 나오미는 남이 생각지 못한 일을 하게 된다. 보아스의 발치에서 잠을 자게 한다.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에게 시집보내고자 한다. 나오미는 룻이 떠나면 자신은 굶어 죽을 판인데도 룻을 보내게 된다.
보아스와 결혼한 룻은 오벳을 낳게 된다.나오미는 이 일이 되어가는 경과를 보고 아마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아들을 낳은 룻은 아기를 안고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간다. 나중에 이 아이는 다윗왕의 할아버지가 된다.
베레스(다말의 아들,유다와 다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족보에 라합에게서 보아스가 나오고...
생명을 선택한 룻의 선택에서 그리고 라합의 아들 보아스의 선택에서 ...
생명의 선택에서 다윗왕이 나오고 예수그리스도가 나온다.
다말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고 룻의 집안이 내 집안이고... 그래서 우리는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다.우리는 서로 배경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ㄷ다르고 선악의 개념이 다르지만 우리가 바라는 기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싸움을 싸우되 생명을 선택하는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다. 남을 이기지 마라.
스스로 속이지 마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
남편을 바보 취급하는 그 집안의 그 아들도 똑 같은 취급을 받는다.
나는 엎드려 은혜를 받는다.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룻기를 읽고 명문가정 되도록 말씀을 묵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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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룻기

우리 나라는 OECD 가입국 중 자살율 1위의 국가이며, 대부분 우울증이 자살의 원인이라고 한다.

경제적 문제나, 건강의 문제나,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고민하고 침체에 빠져 있는 경우도 있다.
본문에서 예루살렘 성 한가운데서 피폐해져가고 있는 자신의 민족을 지켜보고 있는 예레미야를 볼 수 있다.
상황이 매우 비참하고 처참했지만 예레미야는 절망 가운데도 소망을 잃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절망 가운데서 소망을 건져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망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기억'이 아니라 '마음에 담아둠으로' 소망을 건짐을 알 수 있다.
마음에 담아둠: 중심에 회상함
기억: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회상하는 것

예레미야는 소망이 없는 자기 민족을 기억하였다

20절 기억(remember)은 낙심을 낳는다. 짜증나고 힘들어진다.
21절 마음에 담아두면(recall) 소망이 된다. 의식적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기억(remember)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낙망과 원망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마음으로 가져가(recall) 하나님의 해결책을 구하여야 한다. 그런 사람을 말씀은 '복 있는 자'라고 한다.
단순한 기억을 멈추고 마음에 담아 두어야 한다. 그럴 때 소망이 있다.
그러면 무엇이 예레미야로 하여금 절망 가운데 소망을 노래하게 하였는가?
22절 그러나 하나님이 남기신 이 사람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실 것을 보게 되었다.
그전에 그가 보았던 것 숲과 담즙은 없어진 것들이었다. 이제 그의 시선은 살아 남은 자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미국 흑인 들이 존경하는 인물 중 '조오지 워싱턴 커버'(땅콩박사)가 있다.
그는 부모가 버린 사람이었지만 농학 박사가 되었고 그는 흑인 최초로 국회의사당에서 연설을 했던 사람이다. 폭락한 땅콩을 쥐고 기도하였을 때 그것을 이용한 공업용품 100가지 발명품을 발명하게 되었다.
없어진 것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고 실수를 생각하면 답답하지만 내게 있는 것을 생각하면 소망이 있다.
설령 몸둥아리만 남았다 할지라도 나는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신묘막측하며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게 면류관을 씌워주시기 까지 나의 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회상을 통해 살 가치를 발견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두가지가 있다.
1.매일 확신에 거하라.
23절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매일 매일 깨닫고 새로워졌다.
사람은 너무 약하기에 잊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 할 수 있는 통로로 해를 떠오르게 하신다. 그저 있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알았다면, 
2.하나님께 맡기라.
24절 바라라
26절 잠잠히 기다리라
연습을 하면 우리 인생이 바뀐다. 생각을 바꾸면 습관이 바뀐다.
하나님을 기대하고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면 우리의 인격이  바뀌고 우리의 운명이 바뀐다.
주님을 바라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소망하는 자의 삶은 다르다.
무엇이 기적인가?
살 소망이 없는 자가 살아 가는 것이 기적이고, 웃을 수 없는 절망 가운데 있는 자가 웃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기적이다.
삶의 능력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소망을 던지는자 빛을 던지는자 소망을 던지는 자가 되라.
나에게 살 소망을 주는 주님
빛을 던지는 자로
절망 가운데 소망을 주는 자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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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4장 23절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어떻게 지키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불행이 결정된다.
큰문제 앞에서도 마음을 잘 지켜서 마음을 추스리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미성숙할 때는 채찍으로 다스려도 마음을 지킬 수 있으나 지위를 가지게 되면 말한마디에도 마음을 지키기가 어려워져 실쭉샐쭉하게 된다.
무력으로 우리가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통제하는 힘을 길러야한다.
열매맺지 않는 가지는 잘라내어짐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또 나를 얼마나 참으실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종말을 향한 움직임에 민감해야한다.
종말이 오기전에 하나님 앞에 두렵지 않는 결과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가정적으로도 돌아보아 심판받을 일을 하고 있다면 빨리 회복해야 한다.
만약 열매를 맺더라도 조상들이 맺은 인간의 열매만 맺고 있다면 그 삶은 실패한 삶이라 할 수있다.
라이언 일병의 최후의 고백!
인생의 법칙!
괄목할 만한 인생의 열매가 있을 수 있도록...
내가 돌아보아 보람을 느끼고 희망을 느낄 수 있어야하는 대상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지켜주신다.
1절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
바울의 열매인 사람들을 말하는데
2절 '관용'이란  내가 아래로 내려가 사람들을 받아주고 섬기는 것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신다.
내 세력을 만들지 말라
성령님이 대장 되시고 예수님이 대장 되셔야지 내가 대장 되어서는 않된다.
우리 하나님 마음에 실망감을 주는 일은 하지 말자.
3절 시험 들어 실족하여 믿음이 밑바닥에 처박힌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도우라고 말씀하신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라.
그 사람들이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고 자유로운 사람이다.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죄책감이란 놈을 매일매일 말씀의 지우개로 지워야 한다.
남의 인생 걱정해 준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은 하나도 없다,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나의 말이 옳을 수도 있으나 그말이 살리는 말도 아니도 변화시킬것도 아니고 생명의 말도 아니다.
말만하는 예수님의 앞에ㅔ서 제자들이 행동으로 옮기니 오천명이 먹고 12광주리에 남았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수학이고 하나님 나라의 제정원리다.
'아마존의 눈물' 원숭이를 좀 작게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간지럼을 태워 웃게 만드는 장면.벌거벗고 사는 그들도 그렇게 예수그리스도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모이면 그 기쁨을 증폭시키고 오래가도록 유지 시켜주고... 모일 때마다 그런 사람이 되라.
'관용'이란 내가 스스로 종의 자리로 내려가 섬기는 것이 관용이다. 나보다 힘 있는 사람 앞에 무릎 꿇는 것이 관용이 아니라 나보다 못한 사람, 힘 없는 사람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기도 응답은 항상 세가지다.
YES,NO,WAIT이세가지로 응답하신다.
우리 하나님 앞의 기도는  어느 것이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신다.
하나님의 예스, 노, 웨이트의 응답은 어느 것이든 나에게 가장 합당한 기도 응답이다.
내가 기도하여 기다리라는 응답을 받았다면 기다리면서 타인이 은혜를 받고 나도 은혜를 받는 것이다.
기도는 자기와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시간이다.


예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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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출애굽기 25장 1절 ~9절)

2010/07/11 14:43 | Posted by 미소1004
모세가 지을 집은 하나님이 사실 집이기에 거룩하다 라고 말합니다.
40일 동안 산에 올라간 모세는 하나님의 집을 구경하고 왔습니다. 그동안 보고 기억한 것을 이 따엥 하나님의 집을 짓도록 하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집은 하늘의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 지어졌지만 땅에 지어진 하나님의 집은 땅의 재료로 만들어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집에는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거룩한 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육신 가운데 거하신다는 말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더이상 내가 속되다 하지 아니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되고 거룩하여지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 이땅의 소재들이지만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그곳이 성소가 되고 하나니님의 집이 되어집니다.
하국 중국 일본의 세나라의 문화를 살펴보면 이 새나라중에 우리나라만이 가진 독특한 색깔이 있다. 일본은 다른 나라에 쉽게 동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ㅓ'발음이 없다. 그들은 버드나무 습성이 있다. 그들은 외세의 문화를 빨리 받아들이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문화는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화합하여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더 옮은지 모른다.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삼겼지만 삼킨게 아니었다.
한국인의 습성에는 타인에게 먹히는 것 같지만 먹히지 않는 습성이 있다.
하늘의 집을  보고 내려온 모세가 땅에 하나님의 집을 짓고 있는데 내가 드린 땅의 재료가 어떤 모습으로 쓰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드린 일체의 모든 것들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어떤 모습으로 달라붙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나의 희생 헌신 나의 눈물이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하나 보석으로 박혀 있을 것이다.
창조주를 위하여 더 많이 주앞에 바치고 주앞에 드리고 더 헌신하며 살아가야 한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우리만의 특성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른다.
'스팸메일' '스패문자'
처편일률적인 맛을 가졌다는 뜻에서 스팸이라는 뜻이 붙었다.
'시루떡 메일'
예전에 우리 민족은 떡을 돌리며  그 집안의 이야기를 알렸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땅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집을 소리로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재물 눈물 땀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드리는데 있어 인색하면 않된다.멋지게 드리라. 한국인의 정을 느끼게하라.
우리 민족의 정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 바치는 자이다'.
이런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거룩하여 진다.
재미 없고 의미 없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손에 붙들리면 재미있게 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가 되라.
옛사람들이 어떻게 사랑을 나누고 정을 나누었는지 기억하라. 내 정성을 담아 그들을 먹이고 그들을 즐겁게 해주었는지 기억하라.
내게 있는 것을 내어주는 자야말로 그 사람이 효과적인 복음을 감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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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열매 (요한복음 15장 6절 ~11절)

2010/07/11 11:57 | Posted by 미소1004
'나는 포도나무요 아버지는 농부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예수님은 인간을 포도나무로 표현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포도나무이기에 그 포도나무는 반드시 열매를 맺되 가장 좋은 포도열매를  맺고 참포도를 맞게 되어있습니다.
포도나무는 가구나 재목으로 쓸수없고 자료에 의하며 화목으로도 쓸 수 없어서 포도나무는 열매 이외에는 바라볼 것이 없는 것이 포도나무 입니다.
인간은 조물주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없으면 다른 것으로는 그분을 기쁘시게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멸매로 그분을 기쁘시게 할수있습니다.
포도는 어떤 열매인가?
일단 원기를 회복시키는 열매이고 나그네들은 장거리 여행시 건포도로 힘을 얻었고 중동지역에서는 소중한 음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잔치집에 포도주가 없으면 손님들이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포도주는 의약품이 없었던 당시에는 상처를 소독하는 역할을 하였고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포도주를 마쳐  질병을 고치라고 하였다.
갈증을 해소하고 기운이 나게하고 약으로 사용되고 기분까지 좋게하는 것이라면  포도는 축복의 산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복음을 듣게 되고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 그분께 접붙임바 되어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나올 수 없는 열매를 맺게 하셨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나무에 붙어 있어서 은혜 가운데 있게 되었다.
가지가 되어 멸매를 맺기 위해서는 뼈아픈 말을  힘들지만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아니하며 밖에 버리운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이 많으니까 나를 용서해 주겠지 봐주시겠지 눈감아 주시겠지 하는 생각은 착가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 나의 왕이라면 그분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구원은 값 없이 받았으되 이 땅 가운데서 열매 맺는 방법은 순종 밖에 없습니다.
교인이 열매맺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열매는 배부르게 하는 열매도 있고 치료하는 멸매도 있고 기분좋게 하는 열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참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항상 기도하며 봉사할때는 눈치보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만 남기며 봉사하는 사람이 되라.
순종하는 자만이 살길이다.
열매 없는 성도는 쓸모가 없습니다.
포도 나무가 아무리 치장을 한다 할지라도 백향목이 못되고 참나무가 못된다.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실 때는 열매를 바라보고 기다리고 계신다.
그런데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손으로 비벼도 가루가 되버린다.) 불사른다.(그 자리에서 쫓겨난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영적 부흥을 이루지 못하며 우리다 모가지다. 많이 맡긴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맡긴대로 찾으시는 분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에서 또 하나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포도가지는 좀 늦게 싹을 틔운다.
교회는 열매 맺지 못할 성품 습성을 잘라내는 곳이다.
말씀 받지 못하는 습성을 잘라내는 곳이 교회입니다.
가지 자른다는 이야기 그냥 읽고 끝낸다면 아무의미가 없지만 내안에 적용해서 나의 열매맺지 못하는 부분을 자르고 전지 한다면 그 사람이 말씀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내가 높아지면 무엇을 할 것인가?
창조주 하나님이 인생의 열매를 찾으실 때 극상품 포도를 드릴 수 있는 자가 되라

사과나무 가지에 꽃이 피어있을 때 프로 농부들은 가지 위쪽에 붙어 있는 가지와 꽃을 제거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가지 위에 붙어있는 ㄱ돠 열매는 제 아무리 잘나도 열매가 될 수 없습니다.
않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어떤 주직이 움직여지는 우너리도 똑같다.
열매가 되기 위해 부절절한 가지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 것이 제도애 관한 것이든 행동에 관한 것이든 환경에 관한 것이든 그것을 제거할 때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징기스칸의 군대가 이길수있었던 비결은 군장의 무게를 줄였다. 가정중요한 것이 스피드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군장은 7킬로그램을 넘지 않았다.
우리의 인생의 가지가 이것 저것 치렁치렁 매달려 있을 때는 열매맥기 힘들다. 죄의 문제 습관의 문제도 해결하고 나갈때 우리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심판주 하나님이 나에게 열매를 요구하실 때 씨만 가득한 들포도만 있다면 그것이 큰일 아닌가 인생 살다가며 영적인 열매에 있어 연습이란 없습니다.
죄 문제에 있어 끊어야 될 것 끊지 않았기에... 우리 영혼은 모두 알고 있다.
자신에게 명령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명령을 받아야 할것이다.
성공이란 열매에 상처만 내고 있는 가지를 말씀으로 기도로 잘라내라
하나님이 귀하게 관리하는 아름다운 가지가 되라


모든 제자는 가지 아래 달려 있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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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내용은 떡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내용입니다.
그때 상황은 제자들은 가진 것이 없는데 예수님은 사람들을 먹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에게 가진 것을 내어보라 하였을때 오병이어를 내놓았습니다.
그것을 본 예수님이 그것을 들어 감사(thank)하시고 나누어 먹고 배불렀습니다.
배불렀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다.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지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기적은 욕심꾸러기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고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냉혹한 존재이다. 우리는 라이벌인 사람이 잘되면 가슴이 타들어가는 존재이다.

기적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일어난다.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신 이유는?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심보를 가지고는 예수님의 마음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보고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마음. 당당함. 그 마음이 부럽습니다.
큰무리를 보시고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예수님.
16절.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쩌면 돈 안들어가는 일만 좋아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무재칠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뿐이니이다.
제자들은 자신을 무능력한 존재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었다.
18절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사르밧 과부 이야기
예수님도 작은 그것을 가져오게 하셨다.예수님의 손에 들리면 기적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 주리지 말고 비굴하게 살지 말고.
아이의 손에 만원이 들리면 과자 사먹고 끝낼일이지만 채소장수의 손에 들어가면 채소를 살것이고, 주부의 손에 들어가면 양식이 나겠고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면 기적이 일어난다. 성도가 바친 것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우리로 빈손으로 가게 하지 않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19절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축사(감사)하시고
여가까지가 우리가 할 일이다.
모든 것들이 다 짝이 있다.
물질로만 가지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날개가 있다. 
축복받는 비결.
감사( 축사)가 바로 그것이다.
다니엘서 6장 10절 다니엘은 왕의 명을 어기고 하루에 세번씩 목숨을 걸고 기도하였다
그때 다니엘은 무엇을 기도하였을까? 그는 하나님꼐 감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니엘은 목숨걸고 했던 일이 감사였다.
그는 기적을 이루는 일이 감사임을 알았다.
로마서 1장 21절 패역한 자들은 감사를 하지않는다고 한다.
'감사거리'를 찾아 감사하라.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거리를 많이 찾아내는 자들은 센스있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교회는 칭찬훈련 감사훈련을 하는 곳이다.
감사를 훈련하고 감사를 연습하는 삶이 되라.
나는 기회만 있으면 감사하고자 준비되어 있는 사람인가?
기적의 재료는 우리 안에 분명히 있다.
내게 있는 것.
예수의 이름-평생을 감사로 사신 분.
썩은 지팡이 모세의 지팡이는 후에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다.
감사가 습관이 되면 자신의 약점이 강점으로 변화된다.
감사라는 말은 칭찬이라는 말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칭찬의 말을 하라
미국이라는 나라가 강대국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칭찬을 나누는 습관 때문이다.
감사를 아부로 받아들이는 우리나라의 못된문화속에서도 감사를 밥먹듯하는 내가 되어야할 것이다. 

저작자 표시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라(16절)"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이면서도 그렇게 작을 수밖에 없는 나라,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도 지금까지도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 이스라엘.
일개의 유목민 이었고 시조 아브라함이 어렵게 백세에 아들 하나를 얻고 그 아들 이삭 또한 어렵게 아들을 얻어 그후 대를 이어 나라를 이끌었던 이스라엘. 그러나 세계의 경제를 쥐고 있으며 수많은 석학을 배출한 나라. 그 민족에게 주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본문의 내용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땅은 권력의 기울기에 따라 핍박을 많이 받았던 땅이다.(진주)
보수적인 동네인데도 저항적인 피를 가지고 있는 땅.
대한민국 또한 그러한 위치에 있는 땅이다. 우리 조상들은 우리 자손들에 때로는 이쪽으로 때로는 저쪽으로 눈치 빠른 줄서기를 하였으나 그 결과는 조약맺은 나라의 배신과 지배였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민족은 어덯게 되는지 말씀하신다.
"다른 신들을 섬기면 반드시 망할 것이라."라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국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식민지 시절을 통하여 알게 하셨다.
그러나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또 기도해야할 기도제목이 있다면 북한은 북한대로 중국을 의지하고 남한은 남한대로 미국을 의지하는 것을 기도해야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잘하는 것이지만 그나라의 무기를 읮하고 돈을 의지하는 것은 오늘 본문 말씀처럼 망하는 일 밖에는 없다. 
하나님이 나의 배경이 되고 나의 지도자가 되심을 믿으라. 기독교의 역사가 세계의 역사다. 교획가 윤리의식을 상실하고 도덕성을 상실하면 그 시대를 암흑의 시대라 한다.

그러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1.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일 때마다 회개해야 한다.
회개해야 이 민족이 살 수 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하라. 기독의 적금, 기도의 보험.
예배시간 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 되라.
하나님을 만나면 언어가 변한다.
네 죄를 토설하라.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회개해야한다.
교회를 다녀도 그 죄를 토설치 않으면 성경 이야기는 나와 상관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회개하라는 것은 만고불변의 축복의 법칙이다.
많은 죄가 있든 적은 죄가 있든 하나님의 전에 들어오면 우리 죄를 토설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라.
말씀이라는 것이 도박에 중독된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중독자도 회복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내 삶이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창조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한다.
말씀을 듣기만 할뿐 듣고 지켜 행하지 않으면 않된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은 세상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산 사람들이다.
모세라는 인물.
오늘 우리가 구원 받는 데도 모세의 공로가 대단하다. 세상적으로 보면 바보같은 사람이지만 내가 잘되기 위해 후손이 잘되기 위해 날마다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한다. 하나님께 끊임 없이 기도해서 회개해야한다. 들은 말씀을 실행해 옮길 수 있는 성도가 되라.
먼저 순종하는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시고 복을 내려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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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한 삶(요한복음 16장 7절~8절)

2010/05/16 11:36 | Posted by 미소1004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필요한 때가 이때다.
성령의 충만함 받기를 위해 기도하라.
미국 시카고에 대 부흥이 일어난 적이 있는데 부흥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하면 모든 것이 눈치보느라 피곤하고 빡빡학고 일을 해도 기쁨이 없는 곳이 이곳이다.   라고 생각하고 성령이 없어서 이런 현실이 일어났음을 자각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을 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기로 기도하기로 결심하고 매일 간절히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러는 가운데 목사님 눈에 한사람이 눈에 띄었는데 그는 누가보더라도 암흑가에 일하는 사람이고 조직폭력배라는 느낌을 주었는데 그가 설교시간 내내 목사님을 노려보며 말씀을 들었는데 설교가 끝나고 몇몇 사람이 남아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중에 그도 끼어있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그가 도박일을 하려고 가다가 아는 사람이 간증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마음 가운데 알수없는 혼란이 오고 두려움이 엄습하여 가던 길을 가는 중에 난생처음으로 경험하는 마음의 혼란을 경험하고 차를 세워 교회에 오게되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말씀을 듣는 내내 자시에 대하여 너무 실망스럽게 생각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돌이키게 하는 알수 없는 이 힘이 무엇인지 당황하여 이렇게 왔다고 고백하였다.
목사님은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들려주었다. 성령님이 당신은 죄인이고 당신의 죄로 멸망받을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그 삶이 죄를 회개하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 그의 변화된 모습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성령님이 다스려야, 일해주셔야 일하는 그곳에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이 붙게 된다.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성령이 오셔야 죄를 깨닫고 심판을 깨닫고 진노의 불을 피할 길을 알게 된다. 기본적으로 구원에 이르는 성령의 은혜는 있는데 성령의 충만이 없다.
사람이 가장 사람다워지는 것이 '성령충만'이다.
성령을 받고 사람이 자꾸만 하나님 흉내를 내는 것이 성령충만이 아니다. 일어나는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눈을 지니는 것이 '성령충만'이다.
'성령충만함'이라는 것 '가장 사람다워지는 것'이다.
나쁜 방향으로 악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할 있어야한다.
성령이 오셔서 좋은 것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우쳐주시는 것이다.
성령이 오셔야 죄를 깨달을 수 있다.
9절: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고 있다.
남을 평가하는 사람은 자신의 눈이 남름대로 정확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기 자만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붙잡아 인도하시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온 것이 죄중에 가장 큰 죄임을 까달아 알게된다. 오직  성령만이 그 일을 할 수있다. 성령님이  이깨우침을 주시지 않는 다면 이 말씀에 아멘 할 수 없다. 
10절: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성령이 주시는 지혜는 의라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인격이라는 것이다.
성령이 가르쳐주시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우리를 살 리는 의라는것이다.
11절: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세상의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존재라 죽음을 가장 두려워한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살아있는 사람이 애통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한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라 다시는 못날줄을 알기 때문에 운다 이 세상은 사형 집행을 당하기 위해 잠시 대기하는 곳이다. 이런 우리에게 놀라운 비밀을 가르쳐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신데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실을 알려주는데 그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믿는 것이다. 이 모든것을 알려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우리로 믿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하늘의 지식을 알수있는 것도 성령님이 오셨기 때문이다.
성령충만함을 위해 기도해야한다. 그래서 다시는 교회에 성령이 없다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하다.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가 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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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는 삶(열왕기하 4장 1절~7절)

2010/05/09 11:51 | Posted by 미소1004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성령의 빛의 충만함을 받지 않고는 일할 수 없다.
본문의 내용은,
선지 생도의 아내가 죽은 남편의 빚을 다 갚지 못하여 그 빚을 갚기 위해 사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는 불쌍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홀로된 이 여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지자 엘리야를 찾아갔다. 하나님은 나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때로 육신의 부모는 '너 인생 네가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두기도 한다. 살다보면 무엇 때문에  하지 못할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를 구원한 하늘 아버지는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책을 나에게 주시는 분이시다. 하늘 아버지가 나의 진정한 부모가 되심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결함을 받는자가 되라

(2절,3절) 내 모든 암담한 현실을 해결하는 방법은 '비워라'라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비워야할 것을 비우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으며 성령 받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비우는 작업이다. 
이스라엘 최고의 지도자 모세도 자신의 모든 직분을 버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장작 40년동안 자신을 비우는 싸움을 하여야만 했다. 나이는 상관없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을 비운 사람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따름에 있어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했다. '자기 비움'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그에게 영광스런 면류관을 예비해 주셨다.
나에게 하나님 말씀보다 더 반가운 소리가 있다면 하나님의 일을 결단코 할 수 없다.

(8절) 귀한 여인의 섬김-간권하여(강력하게 권하여)

은혜를 받으려면,위기를 극복하려면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간권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 앞에 쓸데 없는 자존심을 세우지 말라.
옛날에 살아 계신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고
옛날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지금도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동일하신 분이다.
옛날에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나를 사랑하신다.

간권하는 신앙선배들의 신앙의 힘을 받아라!

(29절)게하시를 시켜 사람을 살리는 일을 시키는 일-집중하여 전념하라.
영적인 일도 집중하고 전념할 때 이루어진다. 세상의 원리 또한 그러하다.
내가 하나님께 구하는 대로 하나님은 이루어주실 것이다.
믿음의 세계에서는
내 생각이 하나님을 향하여 열려 있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시고 능력을 주신다.
정말 무서운 사람은 말씀에 의지하여 사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 세상은 믿음의 사람에 의해 움직일 것이다. 
'믿음의 힘'.믿음을 가지라, 안된다고 말하지 말라.
성공한 사람의 성공 비밀을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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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받는 삶(출애굽기 13장 17절~22절)

2010/04/04 11:42 | Posted by 미소1004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고자 하였던 가나안 땅은 해안선을 따라가면 일주일 정도 걸리는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사십년이란 길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길은 그의 조상들이 다녔던 길이고 그들이 아는 길이었는데, 하나님은 그들이 알고 있는 길로 인도하지 않고 미디안 광야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한이유는 그들앞에 있던 강한 이방군대 블렛셋 군대가 있었기에 그들과 전쟁을 하게되면 이스라엘 민족이 마음을 돌이켜 왔던 길로 돌아갈까 걱정하였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걱정을 하신다?
하나님의 걱정. 하나님의 염려가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곳에는 다 이유가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자기의  백성이 가나안으로 데려가는게 목적이 아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구원하여서 모종삽으로 모종을 뜨듯 딱 떠서 우리를 천국으로 옮겨 천국 백성 삼으시면 될 터인데 하나님은 그러시지 않으십니다.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가 나타나면 그대로 천국 데려가면 좋을 텐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그렇게 다루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예수 믿었으니까 천당 보내시는게 목적이 아니라, 천국은 우리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천국에 합당한 인격으로 우리가 빚어지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정말 착해져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에 가시를 두어 내가 하나님의 인격을 가지도록 참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블레셋이 문제가 아니고 애굽의 군대가 문제가 아니고 아말렉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문제입니다.
선악과 먹으며 죄 지은 우리는 나의 선악은 판단치 않으며서 남의 선악을 가리고자 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습성을 가지고는 하늘 나라에 갈 수 없기에 지금의 우리를 그대로 하늘 나라로 데려간다면 아마도 천국은 그날로 지옥이 될 것입니다.
430년 노예생활을 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그속에 있던 선한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소리칠 힘이 없는 혈기가 죽은 온유한자 모세를  그들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간 그 나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살만한 사람으로 합당한 인격으로 빚어지도록 기다리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형통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많은 세월을 훈련받지 아니하면 이길 수 없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스스로 준비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이 시키지 않으시면 나갈 수 없습니다. 아골골짝 빈들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며 내가 싸워야할 그때가 되면 하나님이 알려주실 것입니다.
 우선 나는 자신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라하여야 합니다. 

세상이 가진 가치와 우리는 다른 가치를 가진자입니다.
모세는 애굽을 떠날 때 금은 보화를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라 요셉의 (미이라 )유골을 가지고 나왔습니다.(19절)
우리 마음 가운데 신앙이 아닌 물질이 나를 지배하면 나의 신앙은 절대 유지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싫어하는 바 된 요셉의 유골을 가져왔다는 것은 말씀대로 살다간 그삶을 따르겠다는 신앙의 증거입니다.
내가 내 본토 친적 아비집을 떠날때 내가 가지고 가게 될것은 무엇일까? 나도 모세처럼 말씀대로 살아간 신앙의 삶을 나의 가치로운 재물로 생각하고 가지고 나올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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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의 하나님(출애굽기 22장 21절~27절)

2010/03/21 15:08 | Posted by 미소1004

'하늘 위의 하늘 그보다 크신 하나님이
작고 작은 나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이 고백이 나를 울립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죄에 대해서는 평생을 벌어 갚아도 갚지 못할 형벌을 내림으로 죄를 막으려 하였다.
최근의 김길태 사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힘써야한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이 고의가 아니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붇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준 법이다.
기독교 문화는 없고 종교만 있는 우리의 문화.
고용인은 종업원을 집 식구에게 하듯 대하라.
고용된 자는 적당히 거짓말 해서 넘어가지 말라.(적당한 거짓말 가끔 나도 하는 것 같다. 그것이 지혜라고 생각하면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충성하는 자가 되라. 성경대로 살라. 최선을 다해 맡겨진 일을 하라. 그렇게 주인의 일을 하면 어느날 곡간의 키를 맡기는 날이 온다. 요셉의 삶이 그러하였다.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우리에게 이유가 되지 않는다. 맡겨졌다면 최선을 다해 일을 해야 하며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땅의 경영권을 주실 것이다.
성경의 말씀은 내 성공의 메뉴얼이다.
혼전 성관계.누구든 책임 있는 짓을 하라.
이 세상 살다가 우리가 이 세상 떠날 때는 내 행위 이력이 하늘 나라의 생명책에 그대로 들어 있다. 젊은날 나의 행위가 그대로 하늘의 나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기억하라. 

경제문제
과부 (젊어서 혼자된 사람),  고아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에 돌봄을 받지 못한 사람) 
어려운 사람이 왜 내 주위에 있는가?
어려운 사람을 돕지 않아도 될 이유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우리는 영특하게도 그 이유를 잘 찾아낸다. 하지만 성경은 과부, 고아  나그네가 도움을 청할 때 거절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내가 타인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이미 하나님께 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가 나에게 양식이나 땅을 요구할때 내어주고 이자는 받지 말라. 그런 하나님이 어려운 사람에게 있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세상은 거대한 고아원과 같다.우리모두는 하나님의 자비로움으로 살아가고 있다. 무심한 땅을 뚫고 식물이 자라며 물속을 쏜살같이 헤엄치는 물고기를 잡아  우리식탁에 올라와 있는 이 현실이 축복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계속적으로 이어가는 방법은 가난한 자에게 잘해 주는 것이다. 그것이 어려운 시절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방법이다.

창세기에 야곱과 에서가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역사상 에서가 훌륭한 때가 바로 이때다.에서에게 있어서는 천하의 원수 야곱이 나타났을 때 그가 한 행동은 동생의 목을 끌어 안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교회를 공동체라고 하는데 이런 교회를 한몸 되게 하는 행동은 있는 자의 가난한 자를 향한 태도이다. 그들의 고통에서 우리가 눈돌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비를 거두어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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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난 해방의 날을 기념하며 유월절이란 날을 절기로 지키는데 그들이 유월절에  딱딱한 무교병을 먹고 쓴나물을 먹는 이유는 그들이 그 음식을 먹으며 왜 이런 딱딱한 음식과 쓴나물을 먹어야하는 이유를 되새기기 위함이었다. 
우리민족 또한 환란의 세월을 보낸 후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러한 후 우리는 세계경제 규모 10위의 풍요로운 나라 해방된 자유로운 국가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해방되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만상을 찡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말한마디 잘못하며 살쾡이처럼 달라드는지 이게 과연 자유로운 사람의 모습이가?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우리는 돈이 목적이 되어 살고있지만 그 풍족을 누리고 있지 못하며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자살로 죽는 인구가 많은 요즘음. 과연 자유로운 국가에서 자유로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라 할 수 있는가?
여기 직장이 불편해서 저기로 옮기면 괜찮겠지 하고 옮겨보지만 거기가 거기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렇게 하면 자유롭겠지 저렇게하면 자유롭겠지 하고 열심히 움직여 보지만 진정한 참된 자유가 과연 있었는가? 이렇게 하다가 끝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사람이 맨 처음에는 양심의 법을 따라 살았다. 그래서 그들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예로 인도네시아의 보루네오섬에는 사람을 잡아다 요리해 먹는 풍습이 잇었는데 그들은 그것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고 살았다. 양심은 결코 바른 윤리를 측정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의 양심의 법은 분위기에 따라 때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양심을 따라사는 것이 결코 바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법을 주셨는데 그것이 율법이다. 그 율법은 숨쉬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죄가 될 수 밖에 없었다.인간이 하는 모든 것이 죄가 될 수 밖에 없었다.하나님께서 죄를 씻을 길을 열어주셨는데 그것이 제물로 죄를 사함받는 제사를 주셨다. 죄를 지을 때마다 제물로 제사를 드려도 죄씻음을 받을 수 없었다. 나중에 선지자들이 이런 행동을 꾸짖고 그들은 기다리던 메시야를 달라고 부르짖었다. 그때 예수께서 나셨다.
따지기를 좋아하던 마태는 동정녀 탄생을 마태복음에 기록하게 하셨고 의사였던 누가가 그의 아버지를 추적한 결과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임을 기록한 것이 누가복음이다.
12살되던해에 성전에서 묻고 답하는 예수. 그후 그를 지켜보던 그의 친척이 세례 요한이었다. 그는 예수의 남다른 모습을 보았고 그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고 세례를 주었다. 세례는 씻김의 의미도 있지만 죽음의 의미도 있었다.
그후 그는 사람낚는 어부로 베드로를 부르셨고 세리 마태를 부르셨고 수가성의 여인의 더러움을 본인이 받으셨고 그는 전도자로 세우셨으며 죽은 자를 살리셨서 사람들의 죽음까지도 본ㄴ인께서 담당하셨다. 이렇게 삼년의 삶을 사셨다.

십자가라는 것은 극형에 해당되는 것인데,
빌라도가 그의 죄없음을 선포하였다.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은 로마 백부장이 그를의인이다 죄가 없다라고 증언하여 주었다 하지만 가장 종교적인 유대인들은 가야바의 뜰에모여 거짓증인을 세워 그를 죄인으로 만들고 죽이고자 모의하였다. 인류역사상 이렇게 온전한 사람을 이렇게 죄인으로 몰아 죽인 적이 없었다. 이유는 세상이 다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기 때문이었다.
죽으신 예수는 삼일 동안 음부의 권세에 계시다가 죽음을 이기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이로써 우리의 죄는 십자가에 못박히고 지옥불에 다타버렸다. 우리 죄는 다 사함받았지만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삼일만에 승천하시며 우리가 구원받은 표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어주셨다.
자유는 여기서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상의 어느것으로도 자유는 얻어질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나는 자유롭지 못한가?
예전이는 억지로 종이 되었는데 자유를 얻으면 자원에서 종이 된다. 자유를 얻으면 그리스도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다 하였는데...
자유를 얻은 사람이 이루어야할 법은 갈라디아서 6장 2절"너희가 짐을 서로지라 이렇게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는 것이니라"
짐을 지는 것은 종이 하는 일이다. 진짜 자유인이 되고 이루어야할 법은 다른 사람의 짐을 지어야한다. 천국을 소유하고도 괴로운 이유는 인생의 목표를 다른 사람의  짐을 서로 지지 않고자 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다른 사람의 힘이 되기 위해서 한다고 인생의 목적을 정해야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하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것인가?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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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준비하라 (고린도후서 9장 1절~8절)

2010/02/28 11:57 | Posted by 미소1004
하나님이 나에게 왜 이런 기쁨을 나에게 주셨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통일신라시대에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문헌의 기록이 있는데 우리는 고기를 삶아 먹는 민족인데 고기를 구워먹었다는 기록은 얼마나 부유하였는가를 말해준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민족은 그때보다 훨씬더 부유하며 더 큰 기쁨을 누리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왜 이런 기쁨을 주셨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봄철과 같다. 어머니와 같은 대지에서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보고 우리는 지금이 봄철의 때를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아 알아야한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때이다.
하지만 가을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지금 뿌려야 할 씨앗과 해야할 일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우리가 살고 있으니 우리는 생명이 있는한 씨 뿌리는 일을 쉴 수가 없다.
본문의 사도바울의 걱정은 마케도냐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고린도 교인은 정이 많으니 고린도 교인을 만나면 너희가 당한 재난에 필요를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늘상 말해왔다. 하지만 고린도 교인이 준비가 되지 못하여 마게도냐인이 실망하고 돌아갈까봐 그리고 그들이 예수를 믿는 믿음에서 떠날까봐 더 걱정하였다.
그래서 본문의 내용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미리 준비하게 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를 하는 이유는
적게 심는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자는 많이 거둔다라는 것을 알게하였다.
십계명의  대부분이 하지 말라는 내용인데 이게명들은 않지키면 복준다는 내용이 없지만(마땅히 지켜야 할 내용이기 때문에) 제 4계명과 5계명은 지키면 복을 준다고 약속하셨다.
안식일을 지키는 일을 잘해야한다.(주일성수)
네 부모를 공경하라. 오래살고  싶다면 부모님께 효도하라. 그러면 내 자식들이 나에게 그렇게 대접할 것이다.
하늘 아버지에게 잘 한다는 뜻은 '성경을 읽어야한다.'는 말이다.초보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성경을 읽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읽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고 이루신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성경을 읽지 않으면 기적인지를 모른다.
하나님이 의인과 악인을 사랑하셔서 모두에게 복을 주신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어야한다.
트루만 대통령과 아이들과의 대화 '나는 매일 성경을 읽었단다."
미국 조지아주에 현대자동차가 들어갔을때 그들이 내건 현수막은 'Thank you JESUS."였다.
기도하라
하나님 앞에 인생을 잘 준비하는 비결이 기도이다.
하나님이 인간 예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주셨는데 그 것을 내것으로 만드는 비법이 기도이다.
기도는 조용히 하는 것이다. 내가 기도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하늘 밭에 그 씨앗를 뿌려주신다
지금 이땅의 부모에게 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인색함으로 또는 억지로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짐승들도 자식을 위해서는 자신의 털로 잠자리를 만들고 남극의 황제펭귄은 자신의 앞가슴살을 떼어 자식을 먹인다. 짐승이 이런일을 하였다하여 복받았다는 이야기는 없다.
사람도 자기 자식에게 잘하는 것은 짐승이나 매 한가지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복은 없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복이란 복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것 복이 아니다. 성경의 어던 인물도 유산을 물려주며 축복이라고 생각한 기록은 없다.
아브라함의 가족이 어떻게 복을 받았는지 생각해보라. 그는 한때 이삭을 죽이고자 까지 했던 사람이지만 객에게는 강권하여 자기집에서 유하게하고 배불리 먹였다.그는 남의 것을 그저 취하지 않았고 자식에게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고 일을 하게하였다.
야곱또한 20년을 무료봉사 했던 사람이고 요셉도한 총리가 되었을 때는 아프리카 사람을 먹이는 사람이 되었고  후일에 모세는 자신의  것을 모두 주고 자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느보산에서 죽었다.
지금의 이스라엘 땅은 복받은 땅이 되어 사막에 나무가 자라는 나라가 되었다.
이사실을 안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 주변을 돕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
부자일수록 조그마한 돈에도 벌벌 떨지만 정말 지혜롭고 정말 부자인 사람이 남을 돕는다.
'장기려 박사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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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찾기 (마가복음 5장 21절~43절)

2010/02/21 14:15 | Posted by 미소1004
찬양은 우리의 묵상이요, 신앙고백이다.
황소를 드림보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더 기뻐 받으신다. 황소 한마리의 값보다 더 귀한 값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다. 
( 이사야 43장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감사를 잃어버리면  우리 입에는 찬양이 나오지 않는다.
마가복음의 3장과 6장 사잉에 제자도를 가르치기 위한 중요한 사건 4가지가 나온다
씨앗비유를 통해 믿음이 자라라고 말하시고
거라사 광인 이야기.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사건
회당장이 예수 앞에 엎드린 이유는 오직 딸을 살리기 위한 유일한 소망때문이다.
12년동안 혈루병 걸린 여자,
성경의 많은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만 만나면 나을 것이다 라는 믿음이 있었다.
혈루병 걸린 여인은 율법상으로 부정한 자라 일컬어 무리 앞에 나갈 수 없었고 극심한 고통 속에 있었다.귀찮은 존재, 언약의 공동체 속에 들지 못한는 존재, 스스로 부정한 존재.많은 의사를 만났으나 고통만 받고 가진 재산을 다 허비하여 소망이 끊긴 상태였다.
주님을 만나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희망임을 깨달아야한다. 아무도 나의 고통과 신음에 귀기울려 주지 않는데 오직 하나님만이 내 소리에 귀기울이신다.
나의 본질,내신앙의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하는가?
내가 교회에서 배워야하는 것은 '예수님'이다.
예수를 만나고자 하는 그 여인의 열정을 배워야한다.
성경에 기적이 등장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나의 문제를 고치시는 부분은 남은 모르고 오직 나만 안다. 혈루병여인의 기적을 보고 회당장은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거룩한 공포)예수님이 여인과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집에서 딸의 부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다.
37절:예수님의 행하실 놀라운 일에 부정적인 역할을 할 딴지 걸 사람은 모두 떼어놓고 가셨다.
예수님은 죽은 소녀를 '잔다'라고 하시고
소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달리다굼'하셨다.
내속에 감사가 없고, 주님에 대한 기대가 없을 때,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잃어버렸을 때, 찬양은 사라진다.
주님을 기대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 생활은 바리새인과 다를게 없다.

주님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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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리는 모든  혜댁이 하나님으로 부터 계획되고 조성되었음을 알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받치는 순종을 보며 그가 어떻게 순종을 할수있었는지 알라
아브라함이 하였던 순종을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망한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기에 그가 한 일을 우리도 하여야하며 그의 길로 따라야하며 그리하였을 때 우리도 믿음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혜댁이 하나님으로 부터 계획되고 조성되었음을 알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받치는 순종을 보며 그가 어떻게 순종을 할수있었는지 알라
아브라함이 하였던 순종을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망한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기에 그가 한 일을 우리도 하여야하며 그의 길로 따라야하며 그리하였을 때 우리도 믿음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예레미야 1장 4절 ~10절)

2010/01/31 11:57 | Posted by 미소1004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5절)"
2010년이 벌써 한달이 지나갔다. 세계의 여러사건 사고를 들으며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로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할것임이로다.
보통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일반적인 부르심과 (구원을 얻게하는 부르심) 특별한 부르심이 있다. 특별한 부르심은 구원받은 자 가운데서 구원에 대한 사명을 가지고 전할 사명을 주셨다.그러므로 우리는 특별 사명자임을 잠시도 잊으면 않된다. 지금은 우리는 보편적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있다.예레미야에게 임하신 사명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줄로 알고 하나님이 나를 특별하게 부르셨음을 항상 기억하라.
살아가는 날까지 특별소명을 이루어고자 애쓰고 힘써야한다.

예레미야는 예수님이 오시기전 600여년전에 유대땅에 살던 사람이다. 옛날에는 꿈이나 환청으로 하나남의 음성을 듣는다.예레미야는 힐기야라는 사람의 아들로 그는 제사장이었는데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 힐기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이 강단을 통하여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신다. 그러므로 전해지는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특별한 소명을 주시는 것이다. 주의 종이 명할 때 현실적으로 따르기 힘들지라도 아멘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이 색다른 방법으로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자신의 말을 유다에게 전하라 하셨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리라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시고자 하는 뜻을 알리셨다.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어렸을 때부터 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는데 그러한 예레미야에게 완악한 유다에게 가서 하나님의 꾸짓음을 전하라 하셨는데 그는 이일로 인해 슬프다고 하나님께 하소연한다. 완악한 유다에게 이 일을 어떻게 전할 것인지 그가 당할 어려움은 불보듯 뻔한 것이었다.
농사를 지어도 기쁘게 일하는 농부가 있고 힘들게 일하는 농부가 있는데 즐거운 농부는 추수시의 농부고 힘드는 농부는 봄철에 힘들게 일해야 하는 농부이다.
선지자도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농부가 있고 어려운 말 책망의 말을 해야하는 농부가 있다.하필이면 에레미야에게 맡기신 일이 가서 그들의 허물 잘못 죄악을 지적하고 그들을 돌이키라 하셨다. 그리하여 그는 아이라 말할줄 모른다 한탄한다. 하나님은 교만한 유대를 위하여 새파랗게 젊은 지도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들의 허물을 돌이키라 경고하신다.
교만의 끝은 패망이다. 나의 허물 육체의 가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겸손해져야한다. 나를 통하여 이 공동체를 살아있는 공동체로 만들어 가신다.나를 하나님의 저입망 그물로 나를 건져올리실 것을  믿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고 엎드러지게 하신다. 내가 일어서도 복이고 나가도 복이란 말은 나무에 잎이 하나도 없어도 희망이 없다고 하는 그 때가 땅으로 뿌리를 내리는 시기이다.
7절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 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하라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그 사람의 언어를 먼저 교정시키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을 아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신다.일이라는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옆에서 긍정적인 위로와 격려가 있을 때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러므로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가라는 곳에는 갈 수 있지 않느냐 내가 전하라는 말은 할 수있지 않느냐 이것이 하나님의 논리다. 부흥은 하나님이 시키신다. 나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만 하면 된다.

8절 두려워 말라 하신다. 예레미야가 유대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을 전했을 때 그가 들을 비난으로 인해 그는 두려웠다 그에게 퍼부을 저주를 그는 걱정했다. 이 때에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 하시고 그들의 비난과 저주를 무효화 시킬 것이라 하신다. 걱정 말라 하신다.
우리가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수 없으나 그것이 싹이 트지 않도록 마음을 지키는 것은 나의 책임이다. 나에게 악한 이야기 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 입을 막고 무효와 시킬것이라 하신다.

9절 내가 내 말을 내 입에 두었노라
한번 하나님이 특별 소명을 두시고 하시는 일은 그 사람이 아이이든 부족한 사람이든 하나님이 들어사용하는 그 사람은 반드시 강하게 하시고 권위가 있게 하시며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이 이루어 가신다.
교회의 일이 이루어지도록 박수치며 격려하고 동참하라
연약하고 어린아이 같은 젊은 예레미야를 보며 하나님이 나의 산성 보증 보호자 되심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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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중요성(출애굽기21장 12절~27절)

2010/01/24 15:07 | Posted by 미소1004
귀를 뚫으면 영원한 종이 되지만 영원한 아버지가 되고 영원한 남편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칠수도 없고 고칠 필요가 없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 이해되지않는다고 덮어버리지 말고 후에는 확실히 알 때가 온다. 그때를 위하여 말씀을 듣고 외워두라.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지금은 몰라도 나를 위한 이정표가 그안에 있고 엄청난 비밀이 그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은 제6계명을 나의 삶 가운데 어떻게 지킬것인가 하는 말씀이다.
인간이 아름다운가?
장애인이나 불구의 몸, 교통사고를 당한 몸을 볼 때, 인간의 모습이 어렵고 힘든 모습이 많아 아름답다고 보기 힘들 때도 많으나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살인하지 말라고 하시며, 생명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요즈음은 인간의 생명에 대해 극단적인 표현을 할 때가 많다.
내 육신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심판하실 때는 어느 때의 나의 모습으로 심판하시는가?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말씀은 질서의 문제이다. 우리는 동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인간은 엄연히 다른 존재이다. 만들어진 소스가 다르고 신분이 다르다.하나님의 작품이고 하나님의 구속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감정이라는 것이 있어 이것이 밖으로 드러나면 나를 놀래케 한다.인간은 누구나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후회할 짓을 하게 된다. 보복이라는 것을 한번 시작하면 계속적인 보복이 이루어진다. 이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이 국가라는 기관을 세우셔서 보복의 길을 열어놓으셨다.
휴머니즘의 시작은 종교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주창된 것인데 진정한 인본주의는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나의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생명을 내 손으로 어찌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은 사탄이 주는 생각이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데려가실지는 모르지만 나의 생명을 내손으로 어떻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하는 것이다.
개신교는 빠른 성장을 위해
이혼, 혼전순결, 자살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카톨릭은 다루었다. 정도를 걸은 그들은 지금 빠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지라도 끝까지 하나님께 쓰임받는 생명이 되라.
실수로 사람을 죽이게 되면 빨리 그자리를 피하라. 그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것은 상대로 하여금 나를 죽여달라는 소리와 같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도피성을 만드셨다. 상대방의 화가 누그러질때까지 기다리게 하고자 하는 지혜이다..
예기치 않은 살인이 일어나고 허망한  죽음이 나로 인하여 일어날 때 이는 하나님꼐서 그를 통하여 그의 생명을 받기로 작정하심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기심이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다 라는 사실을 인정하라.
기독교는 부모를 구타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 명한다. 부모에 대한 악한 의도를 가지고 급소를 때리는 것을 말한다.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언어폭력, 대놓고 이야기 하는 것) 성경은 이를 살인에 해당한다고 하심.
납치범이나 유괴범은 반드시 죽이라 하심
낙태는 살인이다. 내가 편하게 살고자 낙태를 하는 이유는 분명한 죄악이다. 내가 생명에 대하여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죄를 금식하며 반드시 회개하라 우리 조상들은 아이가 잉태되면서부터 나이를 쳤다.예수님은 잉태되면서부터 구주이셨다.
24절, 25절 이슬람 사람들은 잘못한 것에 대하여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이 말씀을 근거로 그렇게 적용하고 있다. 이 말씀은 재판장이 판결을 내릴 때에 이말씀을 기억하여 판결하라는 말씀이지우리더러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제대로된 보상을 하라는 뜻이다.
넉넉하게 사람들에게 배푸는 자가 되라 풍성히 베풀라 넘치도록 채워주라 그리하면 넘치도록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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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에 대한 규례"(출애굽기 21장 1절~11절)

2010/01/17 14:23 | Posted by 미소1004

세상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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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예수(누가복음 2장 41절 ~52절)

2010/01/17 11:56 | Posted by 미소1004
은헤의 강가에 나 주님과 함께 있네
생명의 강가에 나 주님과 함께 있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시편73편28절)

예수님의 어린시절을 통해 우리가 아이를 교육하는 방법을 알아갈 수있다.
52절: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의 성장 과정이 어떠 하였길래 자라면서 더욱 사랑스러워 가셨는가?
지금 현재의 우리 나라의 여러가지 문제들 4대강 문제, 수도권 분할문제, 국론 분열 ...집권여당 속에서도 친박,친이로 갈린 문제들...답답한 우리의 현실과 북한과의 관계, 일본과의 문제...
어려운 이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다.
본문의 예수님도 유명한 율법사, 힐렘학파,샤마이파,공회의원 앞에 있었다. 예루살렘은 동서 고금의 문화 종교가 모여 싸움을 하는 곳이다. 이런 장면의 중앙에 예수님이 있어 묻기도 하고 답하기도 하는 것이 모인 이들을 모두 놀라게 하였다. 이는 세상이 당할 수 없는 지혜요,능력이료,총명이었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각인된 12세의  예수.

1.41절: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절: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절기를 따라(관례대로:자원하는 마음으로)
당시 여인들은 절기에 참여할 의무가 없었는데 마리아는 관례를 쫒아 어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왜 예배를 드리는가?
하나님이 나의 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임을 인식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예배의 문제를 해결하는 교사, 나는 예배를 왜 드리는가?
문제를 해결하고 조화를 이루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를 해결할 수있는 유일한 사람은 예배에 성공한 사람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취임식전 에배를 통하여 그 나라를 다스릴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예배하는 일에 전념하라. 예배에 성공하는 자가 되라
말씀 앞에 똑똑히 서서 집중하라.말씀을 가르칠 때 집중하라.
요란하고 크고 박력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하나님께 집중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말씀에 집중할 때 성공할 수 있다.

2.부모의 양육 태도
우리 가운데도 고장난 사람 삐딱난 사람이 있다. 성도의 자녀는 키가 자랄수록 인격도 자란다.만일 내 자녀가 그렇지 않다면 부모가 자녀를 성도 답게 키우지 않았다는 증거다.
48절: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절"어찌하여 나를 찾았나이까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자식을 낳을 때는 피를 쏟지만 자식을 키울 때는 피를 말린다고 한다. 마리아의 말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근심하였는 줄 아느냐라고 말하고 있다.부모 자식간에 대화가 있었다.
하나님은 내가 범죄할 때 아무말 없이 십자가에 못박힌 그분을 보여 주며 자신이 아프다고 말씀하신다.
문제를 해결할 수있는 대화(I -Message) 를 하라.
상대방이 아무런 극악한 잘못을 저질렀을 지라도 내가 문제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
예수님의 지혜는 양육의 지혜에서 기인한다.

3. 49절의 말씀은 이제야 내가 하나님이  아버지임을 알고 내가 어디로와서 어디로가야하며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라는 뜻이다.(분명한 자기인식이 있었다.)  
자식은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시적으로 나에게 맡겨주신 존재이고 때가 되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아갈 존재이다 자식이 자라며 사랑스런 조재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만나게 하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는 예배.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고백하는 아이로 자라게 하라.

"내 아이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게 해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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