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영원한 말씀II (시편19장 1절~14절)

미소1004 2010. 9. 5. 11:59
'웃사'라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가지게된 하나님에 대한 오만한 태도가  결국은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받을 때 정상적인 경주를 하나님 앞에 해야 한다.
마태복음 4장에는 예수님이 40일  금식한 후에 시험 받으시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예수님이 아주 민감하게 받아들이신다. 사탄은 배고프니까 이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그것을 먹으라고 말한다. 이에 예수님은 상당히 까칠하게 대답하시는데,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것이라"하시는데 어떻게 보면 이말씀은 기독교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이는 역사성이 있다.
이는 4000년 전에 뱀이 하와에게 나타나 선악과를 먹으면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며 하와를 꾀는데 그말을 들은 하와가 선악과를 보니
"보암직하고 먹음직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한지라"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후 남편도 먹게 하였다. 그후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고통속에서 태어나며 힘겹게 살아가며 절망가운데 죽어야 했다.
그후에 하나님이 인간을 불쌍히 여겨 제2의 아담 에수님을 보내주셨는데
이에 사탄이 나타나 주려있는 예수님 앞에
독사 전갈이 있는 광야에서 더 강력하게 나타ㅏ나 예수를 시험한다.
이는 바로 첫사람 아담이 받았던 유혹이었다. 첫번째 실패를 만화하고자 하는 주님의 뜻이 있다.
왜 돌덩이를 떡으로 만들라고 하였나?
우리도 이것을 동일하게 시험을 받고 있는데 이 시험을 통과해야 하늘나라 갈 수 있다.
돌멩이! 예수님은 자신을 늘 돌멩이에 비유하셨다. 하늘로서부터 내려온 돌이라 하셨다.성전의 모퉁이 돌이라 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산돌'이라고 표현하신다. 우리는 지금 말씀의 '돌'을 맞고 있다.
돌멩이가 자신의 심경 골수를 찔러 쪼개고 있다.
사탄은 돌멩이를 변하여 떡덩이가 되게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표피적인 감각을 즐겁게 하는 용도롤 사용하고자 하는 시험이 바로 이 시험이다. 왜 돌멩이를 던지느냐고 하나님께 항의하지 마라. 이 돌멩이가 우리 영혼의 심해에 던져져 영혼이 부서지고 회복되는 역사가 있어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아프고 속이 부글부글 끓으면 그것은 제대로 말씀이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돌멩이를 맞은 것과 같다. 머리안아프게 해주세요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하나님게 말하지 말고 말씀을 듣고 통곡의 소리가 있어야하며 탄식의 소리가 있어야한다.
  
말씀을 들었을 때 통회하고 자복하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마타복음 4장에는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가 있다.
옥토는 씨앗이 떨어지면 씨앗을 품는다. 씨앗을 품는다는 것은 씨앗에게 수분을 주고 자신이 가진 모든 영양분을 씨앗에게 준다. 하지만 다른 밭은(길가, 돌짝밭, 가지밭) 씨앗이 자라지 못한다. 자신의 것을 내주지 않는다면 씨앗은 자라지 못한다. 옥토는 모든것을 씨앗에게 주고 그것을 위해 살게 된다. 그런데 옥토 가 씨앗에게 모든걸 주니까 그씨앗이 옥토를 변화시키는데 이제는 그 이름이 변하게 된다. 그 밭이 밀밭이 되고 보리 밭이 된다. 그 밭의 이름이 바뀌고 황금 물결이 출렁이는 대지가 된다. 너희가 나를 믿느냐 그렇다면 내 말이 들릴때에 말씀 따라 살겠다고 다짐하고 결단하면 얼마지 않아 그 사람의 삶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결실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살았다면 우리는 천국의 향유의 향기로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저 왔다 가는 인생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인생을 살기를 원하신다.
돌짝밭의 돌은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신념 고집의 돌이다. 이것을 들어내지 않으면 옥토가 될 수없다.
가시라는것 나의 명예 면류관 같은거라서 그것을 벗어내리지 않는다면 하나남의 말씀이 자라지 못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마지막을 말씀해 주셨다.
베드로는 그 자신의 고집이 강한 고집덩어리였다. 그가 말씀받고 변화되었다.
우리무리 가운데도 변화되지 못한 베드로가 많다.
변화된 베드로는 풋내기 사도에게 질책을 받아도 일절 변명하지 않았다. 복음은 자신의 의지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우리가 몰라서 무지해서 자신의 의지와 신념과 의견을 주장하는데 이곳은 강도의 굴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곳이 교회이다.옥토라는 곳이 그런곳이다.내가 품으면 나중엔 그 말씀이 나를 품어 줄것임을 믿는다.나중엔 그 이름조차 바뀌게 될 것이다. 내가 그 말씀대로 살아보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더라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사독이 다윗을 위해 레위인들로 하여금 법궤를 가져오게 하였는데 다윗은 이에 대해 사독에게 엄히 명령하기를 제자리에 가져다 두고 레위인은 그 법궤를 지켰다.
법궤를 거기에 두신것은 하나님이 뜻이 있어 그곳에 두셨으며 하나님이 나를 도망하게 하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 말한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시는 그곳에 가서 아멘 하는 그 성도가 옥토인 것이다. 
내 스스로가 나를 경영하고자 하면 남는 것은 허망함  밖에 없다.
레이건 대통령이 저격 당할 당시  경호원들이 몸을 날려 대통령을 지킬수있었던 이유는 부담한 연습이었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는 이유는 나를 위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말씀을 지켜내야 한다. 세상에서 날아오는 멸시 천대의 총알을 받아야한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
구원받은 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사용하도록 허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