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로마서 12장 1절~2절)
미소1004
2010. 8. 15. 11:58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가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여전히 과거의 모습으로 그대로 매어 있는 것이 물질 문제이다.
금과 은 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는대도 그대로 물질 문제에 매여 있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 갑자기 온 세상을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있느니라" 내게 궁핍에 처할줄도 알고~ 사도 바울의 이 말은 어떤 상활 가운데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삶. 물질을 정복하라는 말씀이다. 물질을 쥐고 흔들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는 말이었다.
아브라함이 소돔사람을 구출하고 돌아왔을 때 소돔 왕이 많은 물질을 준자든 것을 거절하였다. 아브라함은 취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다는 권세가 있는 사람임을 보여 준 것이다. 그 영혼은 돈으로 사고 팔수있는 존재가 아닌 구너세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의 물질 때문에 기쁨 소망이 좌지우지 된다면 우리는 아직도 독립된 나라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행위적인 부분에서 우리가 독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독립국의 나라가 아니다.식민지 시대에는 경찰에 돌을 던지거나 비방한다거나 조롱한다거나 폭탄을 던지는 일이 옳은 일이었지만 독립을 한 후에는 그런 일이 옳지 않다 그러나 독립이 되었는데도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선지국과 후진국의 차이점은 화장실 문화에 있다.
후진국의 화장실은 끊임없이 화장실을 치우지만 더럽고 선진국의 화장실은 치우는 사람이 보이지 않지만 항상 깨끗하다. 선진국민은 자신이 자주민이므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자주의식이 있지만 나가서는 자주민이 아니다.
내가 머물다 간 자리에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어서는 안된다.
레위기서를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린 중요한 가르침이 있는데 그것은 그러한 땅의 주인이 되는 사람은 책임이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추수의 규칙을 만들어 주셨는데 이삭은 거두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주인의식 자립을 원하셨다. 자기가 먹을 것을 밭에 나가 이삭을 줍는 수고를 감당하라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축복의 원리이다.
우리는 독립된 백성답지 못하게 살아왔다.
의식의 독립("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
잘못된 줄 알면서도 끌려다니는 의식을 버리라.
의식의 독립
의식에 있어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의 의식을 보여줄 때 우리는 힘을 드러낼 수 있다.
우리는 정통기독교인으로 어떤 의식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가?
소금이 무엇인가? 조금만 넣어도 그 맛을 내는 것이 소금 아닌가? 기독교인의 힘이 어디 갔나? 잘못 되었으면 끝까지 덤벼야 한다.
의식의 독립!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매운 맛이 없어졌다.이게 아니라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고칠 수 있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있는 '체면'
대만이나 일본에서의 자전거 통근길은 70%를 차지하는데 우리나라는 거의 100%가 자가용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 민족이 광 나는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한없이 피곤한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기도하고 말씀보고 판단이 서면 그대로 행하라.
우리의 의식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결정을 짓고나서 뒤를 돌아보지 말고 가되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한다.
자녀를 의식적으로 행위적으로 어떻게 독립적인 존재로 키울 것인가?
온실의 화초같이 모양만 있고 향기가 없는 존재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여전히 과거의 모습으로 그대로 매어 있는 것이 물질 문제이다.
금과 은 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는대도 그대로 물질 문제에 매여 있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 갑자기 온 세상을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있느니라" 내게 궁핍에 처할줄도 알고~ 사도 바울의 이 말은 어떤 상활 가운데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삶. 물질을 정복하라는 말씀이다. 물질을 쥐고 흔들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는 말이었다.
아브라함이 소돔사람을 구출하고 돌아왔을 때 소돔 왕이 많은 물질을 준자든 것을 거절하였다. 아브라함은 취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다는 권세가 있는 사람임을 보여 준 것이다. 그 영혼은 돈으로 사고 팔수있는 존재가 아닌 구너세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의 물질 때문에 기쁨 소망이 좌지우지 된다면 우리는 아직도 독립된 나라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행위적인 부분에서 우리가 독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독립국의 나라가 아니다.식민지 시대에는 경찰에 돌을 던지거나 비방한다거나 조롱한다거나 폭탄을 던지는 일이 옳은 일이었지만 독립을 한 후에는 그런 일이 옳지 않다 그러나 독립이 되었는데도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선지국과 후진국의 차이점은 화장실 문화에 있다.
후진국의 화장실은 끊임없이 화장실을 치우지만 더럽고 선진국의 화장실은 치우는 사람이 보이지 않지만 항상 깨끗하다. 선진국민은 자신이 자주민이므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자주의식이 있지만 나가서는 자주민이 아니다.
내가 머물다 간 자리에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어서는 안된다.
레위기서를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린 중요한 가르침이 있는데 그것은 그러한 땅의 주인이 되는 사람은 책임이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추수의 규칙을 만들어 주셨는데 이삭은 거두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주인의식 자립을 원하셨다. 자기가 먹을 것을 밭에 나가 이삭을 줍는 수고를 감당하라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축복의 원리이다.
우리는 독립된 백성답지 못하게 살아왔다.
의식의 독립("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
잘못된 줄 알면서도 끌려다니는 의식을 버리라.
의식의 독립
의식에 있어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의 의식을 보여줄 때 우리는 힘을 드러낼 수 있다.
우리는 정통기독교인으로 어떤 의식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가?
소금이 무엇인가? 조금만 넣어도 그 맛을 내는 것이 소금 아닌가? 기독교인의 힘이 어디 갔나? 잘못 되었으면 끝까지 덤벼야 한다.
의식의 독립!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매운 맛이 없어졌다.이게 아니라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고칠 수 있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있는 '체면'
대만이나 일본에서의 자전거 통근길은 70%를 차지하는데 우리나라는 거의 100%가 자가용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 민족이 광 나는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한없이 피곤한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기도하고 말씀보고 판단이 서면 그대로 행하라.
우리의 의식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결정을 짓고나서 뒤를 돌아보지 말고 가되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한다.
자녀를 의식적으로 행위적으로 어떻게 독립적인 존재로 키울 것인가?
온실의 화초같이 모양만 있고 향기가 없는 존재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