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정말 좋은 뜻으로 실과 수행평가 문항에 코바늘로 수세미 뜨기를 넣었다. 아이들의 정서 뿐아니라 완성되었을 때의 성취감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 완성해 가는 동안의 애정 등. 많은 가치를 부여했었다.
첫시간 사슬뜨기를 설명해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실 바늘로 아이들은 힘겨워했다. 그래도 열심인 모습이 좋았다. 두 번째 시간이 시작되기 전 쉬는 시간.
티격태격 남 여 아이들이 다투다가 남자 아이가 여자아이에게 바늘꽂은 실뭉치를 날렸고 이를 손으로 쳐내던 여자아이로 인해 그 옆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여자아이 눈꺼풀에 코바늘은 길게 상처를 내고 바늘은 땅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이다.
남자 아이의 손등을 세게 때렸다. 얼마나 위험한 손이되었냐고. 실뭉치를 쳐냈던 여자 아이는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했다. 내가 아이의 어때를 치며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했다.
수업 마치고 성형외과를 추천받아 갔더니 꿰매는 것 보다는 붙여서 낫게 하는게 좋다고 약국에서 몇 가지 보험이 안되는 밴드를 사오라고 했다.
사건이 났을 때 아이들을 야단을 치며 큰소리를 냈다. 화도 많이 났었다. 바늘이 2-3mm 밑으로 지나갔어도 눈을 다칠 아찔한 위치였기에 온 몸의 털이 서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학교로 실뜨기에 관한 민원 전화가 왔다고 했다.
코바늘 실뜨기를 정확하게 잘 가르쳐주지도 않고 수행평가를 칠거라고 하고 아이도 엄마도 모르는데 교사가 좀 더 잘 가르치고 평가를 했으면 한다고 간곡한 태도로 민원을 제기했다는거다.
어제 사고가 나고 실뜨기 둘째시간 수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집에서 연습하라고 한게 화근이 되었다.
담임인 나에게 직접 전화하지 않고 학교로 한 것이 괘씸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어제 일로 이런 일이 생겼고 더 자세히 잘 가르치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혹시 부모님께서 이런 전화를 하실 때는 교장, 교감선생님께 하지말고 직접해주시면 좋겠다고 알렸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간에 내 잘못이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한 여자 아이가 자꾸 웃는다. 아이들을 보내고 난 뒤 왜 웃었냐고 물으니 이유가 없단다.
그러면서 어제 내가 아이들 앞에서 고함을 친 것은 교사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하며 나에게 실망했다고 했다. 나도 내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 너라면 위급한 상황에서 고함을 지르지 않았겠냐고 물으니 답 대신 그래도 내 행동은 옳지 않다고 한다.
이 아이는 얼마전 자신을 뒤에서 욕한 친구를 왕따시키고도 전혀 미안하지 않다고 했다. 뒤에서 욕한 행동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타일렀지만 자신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했다.
아이는 지금도 교사로서 내가 옳지않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했다. 나는 반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다음 번에도 똑 같이 고함을 지를 것이라 했다.
아이와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이 아이의 엄마가 찾아왔다. 학교로 민원 전화를 건 사람이 자신이라고 했다. 이분은 나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교인이다.
어제 병원까지 실뭉치를 던진 남자 아이의 학부모가 태워주셨는데 오는 길에 이 분이 남자아이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남자아이의 학교에서의 사고 친 소식을 전했던 엄마이기도 하다. 그런 전화는 안했으면 좋을 뻔 했는데.
세시 좀 넘어서 시작 된 학부모님의 이야기는 다섯시 반 쯤에 끝이 났다.
무언가 자신을 포장하다 보면 이야기가 오류에 빠지고 지지부진 길어진다.답은 언제나 단순하고 명쾌한데.
퇴근 길 그냥 우울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고 지친다. 힘으로 하는 일이라면 다음날은 또 새로운 기분으로 일할 수 있을텐데 내 일은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니다.
교사는 가르치는 일 뿐 아니라 사고의 책임도 인성의 책임도 학부모 서로 간의 관계도 모두 책임을 져야한다.
나의 책임은 힘겹고 무겁다.
혼자 놔 두어도 비틀비틀 하루가 힘들기만 한데 여기저기 아이에 학부모까지 자꾸 흔들어 댄다.
얼마전 반에서 머리가 깨지는 사고가 났었는데 그 때의 학부모님은 너무도 훌륭하게 대처해 주셨다.
그리고 어제 다치고 다치게 한 학생의 두 분 학부모님도 정말 고맙게 이해를 잘 해주시고 특별히 실뭉치를 던진 남자 아이의 어머니께 고마운 마음이 깊다. 떨리는 내 마음도 어머니와 오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진정이 많이 되었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괴롭힌 사건은 사건을 만든 쪽도 사고를 당한 쪽도 아닌 그 사고를 구경했던 쪽이다.
사고를 낸 쪽도 옳고 그름의 판단이 분명하고 사고를 당한 쪽도 옳고 그름의 판단이 분명한데 사고를 구경한 사람의 판단과 해석은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대로 판단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게 문제다.
그게 제일 힘들다.
마음이 너무 너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