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1.
엄마 팔순이 토요일이라
하루 전인 오늘은 아침부터 쭉 일을 했다. 준비라는 것이 티는 나지 않아도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라 하루가 꼬박 걸렸다. 일이 늦어져서 미용실 들르는 것도 깜빡할 뻔 했다.
2.
미용실 원장님과 대화 중에
원장님네 가족은 아버님 팔순에 딸들이 편지를 써서 읽어드렸다고 했다. 아버지의 다친 이야기, 운전면허 이론시험을 아흔번 넘게 떨어진 이야기... 이야기 듣는 것만으로도 딸들의 아버지를 향한 존경과 사랑이 느껴졌다.
3.
나도 엄마께 편지를 써 볼까? 어떻게 써야할까나...
아버지께서 오랫동안 병을 앓고 어린 자식 넷을 두고 돌아가셨으니 엄마의 지난 삶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기쁜날 엄마 얼굴에 눈물이 맺히게 하고 싶지는 않다. 편지쓰기는 접기로 했다.
4.
엄마를 생각하면...
엄마가 살아계셔서 감사하다.
엄마가 늘 기쁘셨으면 싶다.
엄마에게 내가 착한 딸이었기를 바란다.
5.
팔순을 머리로 계획하고
주문을 하고 돈을 지불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날에 엄마가 웃을 걸 떠올리며 계획하는 동안 많이 행복했다. 이 또한 엄마가 함께 계셔서 누리는 행복이리라.
6.
몸을 사용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몸을 사용하여 하는 준비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여기 저기 고장나 치료 중인 내 어깨와 손가락 탓도 있다.)
아침에 남편과 중앙시장에 갔지만 명절 연휴 끝이라 장이 재대로 서질 않아 금요시장을 다녀오고 마트도 다녀왔다.
7.
내가 맡은 것은 채소와 나물 몇 가지이다.
잎채소들을 씻는데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외 자잘하게 씻고 자르고 다질 채소(마늘, 청량초, 오이고추, 쑥갓, 피망, 당근)도 마찬가지고.
나물은 진짜 많은 시간이 들었다. 콩나물은 빈이가 다듬었다. 콩나물 삶아 무치고, 두부톳나무 만들고, 물미역을 삶아 아주 잘게 썰어 무쳤다.
국거리용 고기를 볶고(육수는 올케가 만들어 온다고 했다)
다시마, 곰피, 물미역 줄기는 비슷한 길이로 잘라 초장과 먹을 수 있도록 따로 담았다.
(예전 같으면 후딱 해낼 일들인데... 내 맘 같지 않은 몸이 참 아쉬운 날이다.)
8.
그날 저녁에 먹을 매운탕에 넣을
쑥갓, 버섯, 호박을 씻고 양념과 함께 포장했다.
미리 만들어 놓은 회간장과 쌈장도 빠뜨리지 않도록 미리 담아 놓고
엄마가 좋아하시는 콜라비, 모밀국수도 가방에 담았다.
9.
후식용 커피는 2통을 미리 갈아두고
선물로 나누어줄 커피원두도 남편이 오늘 다시 볶았다.
조카들이 좋아할 초콜릿과 렌지용 팝콘도 챙기고
엄마 부엌에 필요한 자잘한 물건까지 챙기니 장바구니 세 개가 가득 찼다. 지난번 명절에 서빙용 물건들은 미리 한가방 엄마집에 가져다 두었다.
10.
토요일 아침 옥희설기 들러서 떡케잌만 찾으면 준비 끝~
11.
늦은 밤 감사 가득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다.
엄마의 인생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엄마의 남은 날도 아름답게 평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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