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병원 다녀와서 병가를 내는 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일주일간의 나의 몸 상태로는 수업은 불가능함를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나아질거라는 기대를 가졌었다. 하지만 6-8주 지나야 통증이 좀 없어질거라는 말을 오늘 듣고나니 이 상태로는 안되겠다 싶다.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지혜를 달라고.
교감샘께 전화드렸으나 연락이 안되서
문자를 보냈다.
‘교감선생님, 전화연결이 안되서 문자를 드립니다. 쉬는 날 달갑지 않은 일로 문자를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한 주 내내 조퇴하여 허리치료를 받아왔는데 통증이 더 심해져서 출근해서 수업하는 것이 힘들어져 부득이 한 달 이상의 병가를 신청하고자합니다. 먼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문자드립니다.’
한 시간뒤 교감샘께서 전화를 주셨다. 교감샘의 어려운 형편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누가 병가를 신청했고 또 누가 병가를 2주간 신청했고 ...’.아픈 이에게 이 말이 들릴거라고 기대한 것일까? 흠. 병가 신청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씀이 없다.
마음이 한 없이 슬퍼지고 눈물이 났다.
아픈 사람이 병가 신청하며 구걸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게 아무것도 없다. 그저 들어주는 일 말고는.
지혜로움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런 상황에 나라면...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할까?
명확한 사실 앞에서 내가 해야할 일을 빠르게 설계하고 (누구는 어떻고 또 누구는 어떠해서 뭘 신청했다는 사실의 나열은 듣는 이를 불편하게 할 뿐이다.)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된 위로’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프길 원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나?
두 분의 부장님께 연락을 드리고
마지막으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교장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월요일 일단 출근을 하라고 하신다.
‘강사를 구하게 되면 병가 바로 들어가라 하겠지만 강사를 못 구해서 강사구할 때 까지는 출근을 해야한다고 이도저도 안되면 전담을 담임으로 바꿀거라고 그러면 다른 샘들한테 피해는 가겠지만..., 누구 누구는 사실 병가 신청했지만 학교 출근해도 되는데... ’라고.
아프다고 말한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하는 걸까?
왜 이런 말을 내게 하시는 걸까?
몸이 아프니 여러 가지가 서럽다. 아파서 서럽고 이런 구차한 구걸 같은 말들을 해야하고 또 들어야 하는 것이 서럽다.
아이들 때문에 지난 한 주 내내 아픈 몸을 진통제 먹어가며 근근히 버틴 모습을 그들은 모른다. 교감샘은 알고 계실텐데 알아도 외면하신다. 병가를 신청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지를 그들은 모른다. 일년 공들여 길러낸 아이들 옆에서 마무리도 멋지게 해 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그들은 모른다. 아픈 몸에 병가까지 내면 병이 더 오래 낫지않을까봐 걱정하는 불안함을 그들은 모른다.
교사를 업무상 처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이 길을 걸었던 동지로 봐 줄 순 없는걸까? 아픈 사람에게 처리해야할 일을 만든 골치 아픈 사람이 아닌, 남들도 다 하는 걱정의 말 한마디 먼저 해줄 순 없는걸까?
상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하나님께 매달려 볼 참이다. 내 몸을 빨리 낫게 해달라고.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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