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은 정통교회의 약점에 의해 생겨난 것입니다. 교인들이 이단을 믿는 이유를 보면 우리의 문제를 알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나의 인격, 삶의 질이 믿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자녀에 걸맞는 모습을 가지게 되었음을 뜻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여 자동으로 거룩해지는것은 아닙니다. 믿는 사람을 '성도'라고 일컫는 것처럼 크리스챤은 성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자입니다. 그리하여 내 속에는 언제나 죄 지을 여건만 주어지면 죄의 꽃을 활짝 피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죄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더 고치기가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자기 나름의 DMZ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귀고 연합하고 동거하는데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진정한 용서가 있다면 가까워 질수록 더욱 자유함이 있어야하는데 가까워질수록 다치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진정한 용서가 없기 때문입니다.
눈 감는 것, 내가 이해하자 참자고 하는 것, 다 내 탓이라고 하는 것 등은 용서가 아닙니다. 만약 이것이 용서라면 그 후에 두 사람의 관계가 친밀해져야 하는데 그 후에는 단절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억입니다. 용서하지 않아도 크리스챤 맞지만 용서하지 않는다면 본문 말씀처럼 옥졸에 붙이워 사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옥살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정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용서하시고 편안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또 용서는 감정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의지로 하는 것임을 압니다.
진정한 나 자신과의 만남을 가지고 내면을 들여다 봅니다. 나 자신에게 스스로 용서하지 못한 것, 내 이웃, 내 가족을 용서 못한 것 기억하고, 그 사람을 직시하고, 내용을 알고, 그것으로 인해 자리잡은 나의 못된 성품이 어떤 것임을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그리하여 가깝기 때문에 잘 알기 때문에 사랑스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용서받은 자처럼 행동하고 용서한 자처럼 살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나의 인격, 삶의 질이 믿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자녀에 걸맞는 모습을 가지게 되었음을 뜻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여 자동으로 거룩해지는것은 아닙니다. 믿는 사람을 '성도'라고 일컫는 것처럼 크리스챤은 성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자입니다. 그리하여 내 속에는 언제나 죄 지을 여건만 주어지면 죄의 꽃을 활짝 피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죄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더 고치기가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자기 나름의 DMZ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귀고 연합하고 동거하는데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진정한 용서가 있다면 가까워 질수록 더욱 자유함이 있어야하는데 가까워질수록 다치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진정한 용서가 없기 때문입니다.
눈 감는 것, 내가 이해하자 참자고 하는 것, 다 내 탓이라고 하는 것 등은 용서가 아닙니다. 만약 이것이 용서라면 그 후에 두 사람의 관계가 친밀해져야 하는데 그 후에는 단절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억입니다. 용서하지 않아도 크리스챤 맞지만 용서하지 않는다면 본문 말씀처럼 옥졸에 붙이워 사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옥살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정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용서하시고 편안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또 용서는 감정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의지로 하는 것임을 압니다.
진정한 나 자신과의 만남을 가지고 내면을 들여다 봅니다. 나 자신에게 스스로 용서하지 못한 것, 내 이웃, 내 가족을 용서 못한 것 기억하고, 그 사람을 직시하고, 내용을 알고, 그것으로 인해 자리잡은 나의 못된 성품이 어떤 것임을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그리하여 가깝기 때문에 잘 알기 때문에 사랑스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용서받은 자처럼 행동하고 용서한 자처럼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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