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일기장에 나 혼자만 보는 글을 쓸 때와는 달리 공개된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말과 글의 위력을 새삼 느낍니다. 나의 글이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말 이나 글 자체가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글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읽은 후에 글 자체의 힘에 눌려서 현기증이 날 때가 있기도 합니다. 이런 글은 읽고 나면 한동안 다른 글을 보고 싶지 않아집니다. 그런 글들은 큰 영향력을 미쳤다라고 표현하기 보다 다분히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쓰여진 글일 확률이 높을 때가 많습니다.
말은 음색이나 속도, 세기, 높낮이가 함께 있기 때문에 감정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글로 옮겨놓고 보면 그 의미는 사라져 피식 웃음을 나게 하기도 하고, 말할 때는 아무 것도 아닌 뜻들이 글로 표현되고나면 너무 과격한 표현인 것들도 많습니다.
어제 메모 같은 짧은 글에 호칭을 쓰면서 평소에 사용하던 호칭인데도 글로 옮겨 놓고 보니 이걸 내가 사용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고쳐써야할지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직장에서 퉁명스런 말에 노출되어 있고, 출근과 함께 비난의 말, 지시의 말을 자주 대하다보니 요즘은 사소한 말의 말투나 어감에도 날카로워집니다.
진정으로 걱정해주고 위로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운 하루입니다.
'나 같으면 참지 않는다. 나같으면 이러이러 하겠다.'는 내 행동에 대한 평가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의 말이 아닌 따뜻한 가슴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
따뜻한 말 듣고 가슴 따뜻한 사람,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 살아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어느 순간에도 가족은 비난이나 판단의 대상이 되어서는 않된다고 생각한다. 비난이 시작되었다면 더이상 가족이 아니다. 함께 사는 사람일 뿐이다.
말은 음색이나 속도, 세기, 높낮이가 함께 있기 때문에 감정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글로 옮겨놓고 보면 그 의미는 사라져 피식 웃음을 나게 하기도 하고, 말할 때는 아무 것도 아닌 뜻들이 글로 표현되고나면 너무 과격한 표현인 것들도 많습니다.
어제 메모 같은 짧은 글에 호칭을 쓰면서 평소에 사용하던 호칭인데도 글로 옮겨 놓고 보니 이걸 내가 사용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고쳐써야할지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직장에서 퉁명스런 말에 노출되어 있고, 출근과 함께 비난의 말, 지시의 말을 자주 대하다보니 요즘은 사소한 말의 말투나 어감에도 날카로워집니다.
진정으로 걱정해주고 위로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운 하루입니다.
'나 같으면 참지 않는다. 나같으면 이러이러 하겠다.'는 내 행동에 대한 평가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의 말이 아닌 따뜻한 가슴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
따뜻한 말 듣고 가슴 따뜻한 사람,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 살아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어느 순간에도 가족은 비난이나 판단의 대상이 되어서는 않된다고 생각한다. 비난이 시작되었다면 더이상 가족이 아니다. 함께 사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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