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세상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곳이 아닙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잇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곳이라면 아마도 우리는 더 치장하여야 한다고 더 좋은 옷을 입어야 하며 더 고상을 떨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지만 예수님 그분께서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고 하셨기에 교회 안에 있는 우리도 그러해야합니다.
예수님의 출생만큼 비극적인 출생은 없습니다. 캐롤에 나오는 것처럼 주님 나신 그날은 결단코 고요한밤 거룩한 밤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유대인들을 두번째로 놀라게 한사실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성령으로 잉태되었다함은 하나님이 정자가 되어 인간의 난소에 있는 난자와 결합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정자가 될 수 있나?
어떻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10개월만에 태어나고 똥싸고 오줌싸고 젖을 먹고 자랄수가 있는가?
하지만 마태는 이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내가 알고 있는 분은 이런 분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구세주라면 이런 말도 안되는 말과 족보를 전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의 족보는 결코 환상적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믿고 따르는 '초림'의 '예수'는 이런 분입니다.
청혼녀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듣고 요셉의 행동을 보면, 요셉이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성경은 요셉을 말하기를
"요셉은 의인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끊고자 하여" 아마도 요셉은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 사람에게 마리아를 보내고자 하였던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잉태한 마리아를 그는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천사의 말을 들은 요셉은 자기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런 일을 하였다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따질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종말의 때에 나의 기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변화 받지 않고자 하는 그 기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결코 나의 공로 업적으로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 받음에 대해 하늘의 천사도 시기하고 질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죄에서 구원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알게 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예수님은 말도 않되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하지만 그분은 죄에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내속을 아무리 청소해도 내 속 씻는 것은 세상의 것으로 씻는 것이 아니라 예수로만 씻을 수 있습니다.
댓글